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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대통령-재벌총수 대결의 승률 / 김종구 |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첫 만남의 역사는 굴곡도 많고 사연도 많다. 김영삼 대통령이 30대 재벌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것은 집권 3년차인 1995년 8월9일이다. 당선자 시절 전경련 쪽의 당선 축하인사 면담 요청을 거절했을 정도로 와이에스는 애초 재계에 싸늘했다. 여기에 이건희 삼성 회장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발언까지 겹쳐 권력과 재계 사이의 냉기류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95년 6월 지방선거의 패배, 세계화 추진에 따른 재계의 협조가 절실해지는 상황 등과 맞물려 점차 화해 무드로 돌아섰고, 이런 기류 변화가 재벌 총수들과의 회동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처음 만난 것은 인수위 시절인 1998년 1월6일이었다. 김 당선자는 그룹 회장실이나 기획조정실을 없애고 그룹 총수들이 주력기업의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재계를 바짝 긴장하게 했다. 심지어 재계 쪽에서는 “재벌 해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으나 결국 기우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인 2003년 6월2일 재벌 총수 26명을 청와대 부근 삼계탕집으로 초청했다. 대통령이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있고, 건강상 자신들은 입에 대지 않는 닭껍질을 먹는 것 등을 보고 재벌 총수들이 깜짝 놀랐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노 대통령의 서민적 풍모가 돋보이는 만남이었지만 실제 내용은 재계 쪽으로 무게중심이 확실히 이동한 출발점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구성 이틀 뒤인 12월28일 경제5단체장과 4대 그룹 총수를 만났다. 재계 쪽에서 “10년 묵은 체증이 뚫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재벌적 분위기 일색이었다.
28일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첫 회동 결과도 역시 재벌의 사실상 승리로 기록될 것 같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축인 상법 개정안 약화 쪽으로 물줄기가 바뀐 것 등이 그렇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첫 회동에서 대부분 재벌 쪽의 승률이 앞서는 것이 또다시 증명된 셈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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