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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6 19:07 수정 : 2013.10.06 19:07

조선시대 왕명 출납기구인 승정원은 관리들의 중요한 엘리트 코스 가운데 하나였다. 효종 때 승지를 지낸 관료들이 마지막으로 어느 관직까지 올랐는가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대략 10% 정도가 삼정승(영의정·좌의정·우의정) 자리에 올랐고, 정2품의 육조 판서와 참찬, 종2품의 감사, 참판 등 60% 이상이 종2품 이상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승지가 정3품의 관직 중에서도 ‘당상(堂上)의 극선(極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승정원에서는 매일 국왕에게 보고할 문서들을 검토했는데 문서격식 준수 여부 등을 따져 일부는 보고를 보류하거나 해당 신료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문구를 조정해 보고하는 등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승지들이 탄핵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효종 때 의금부에서 이형익 등을 정죄하도록 왕에게 올린 문서에 대해 승정원이 ‘안율’(按律: 죄를 조사하여 다스림)이라는 두 글자를 삭제한 것을 사헌부가 문제 삼아 관련된 승지와 주서(요즘의 행정관) 등의 처벌을 요구한 것 등은 대표적인 예다.

임금과 신하의 만남도 승정원이 주선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인데 여기에 개인적인 사심이나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끼어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조 때 한동안 왕의 남다른 총애를 받았던 도승지 홍국영은 소론이나 남인들이 정조에게 접근하는 것을 극력 차단했다. 심지어 ‘왕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홍국영을 만나야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다가 청와대 비서실에서 거절당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놓고 청와대 쪽이 정정보도 요청을 하는 등 소란스럽다. 진위야 확인하기 힘든 일이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스로 ‘승지’를 자처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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