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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성탄과 교황 / 구본권 |
제도화된 종교적 축일은 세속화한다. 축제의 대명사가 된 ‘카니발’(Carnival)은 기독교에서 예수 부활 40일 전부터 육식을 삼가던 사순절에서 유래했다. 절제와 금식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고기를 한껏 먹고 즐기는 게 사육제(謝肉祭)가 됐다. 라마단은 한여름 약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무슬림의 신성한 의무다. 종교적 묵상 속에서 인내와 자제를 기르며, 가난한 이웃을 살펴야 한다. 라마단은 현대에 종교 외적 기능이 보태졌다. 이슬람권에서 라마단은 폭식과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편 소비 활성화의 동력으로 여겨진다. 단식과 절제를 보상하기 위한 육체적·심리적 반작용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성탄절이 휴일인 나라는 한국과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정도다.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49년 휴일로 지정됐다. 국교가 없는 국내에서 성탄절은 축제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군부독재정권은 전국민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면서 성탄 전야와 제야만 이를 해제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탄절이 욕망의 해방구란 상징을 갖게 된 배경이다.
구도자들은 의례화한 종교를 개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장사하는 교회에 대한 예수의 채찍질이나 자급자족하는 수도원 운동이 그렇다. 종교 지도자들이 기념일에 베푸는 법어나 메시지도 전례를 넘어선 참뜻을 되새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 선출 이래 선보인 모습은 의례화한 종교를 일신하면서 영성적 울림을 종교 바깥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페이스북은 12억 사용자가 올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라고 발표했고,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가난한 교회”를 갈 길로 제시하고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비판했다. 지난 17일 77살 생일에는 노숙자들과 떠돌이 개를 초청해 베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아침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내놓을 성탄 메시지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217] '올해의 세계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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