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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정도전과 삼성·현대 / 김의겸 |
최근 텔레비전에서 대하사극 <정도전>이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시청률은 11%대로 순항하고 있으며, 특히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50~60대 남성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현실을 읽어내고 싶은 욕구가 작용한 탓일 게다.
그렇다면 주목해야 할 것은 궐내 권력투쟁이 아니라, 경제개혁이다. 조선은 이성계의 무력만으로 개창한 게 아니라, 토지개혁을 밀어붙이며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세워진 나라다.
고려 말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토지 집중이었다. 권문세족들의 토지는 산과 강으로 경계를 삼을 만큼 컸지만, 농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다. 그나마도 소출의 8~9할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정도전은 토지개혁을 새 왕조 건설의 명분으로 삼았다.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한 뒤, 백성의 수를 헤아려 토지를 나눠 주는 ‘계민수전’ 또는 백성의 입을 헤아려 농토를 나눠 주는 ‘계구수전’이었다. 물론 정도전의 이상대로 다 이뤄진 건 아니다. 귀족들의 반발과, 백관의 추대로 왕위에 오르기 바랐던 이성계의 욕심 때문에 ‘과전법’으로 타협해 버린 것이다.(<정도전과 그의 시대>) 그래도 관청과 개인이 가진 모든 토지문서를 개경 한복판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이 여러 날 동안 탔다고 한다. 토지개혁은 농민들이 새 왕조를 지지하게 된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600년이 지났지만 부의 집중은 여전하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거둔 영업이익 합계가 국내 전체 법인 영업이익 합계의 22.4%에 이르고, 두 그룹이 증시 시가총액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32~3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 역시 26%로 1위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정도전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세상을 바꾸려면 토지개혁같이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정면으로 떠안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에게 집중된 부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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