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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미스 리플리 / 김의겸 |
잠수사를 자처하며 “배 안의 생존자를 확인하고 소리까지 들었다”는 거짓말을 한 홍아무개(26)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홍씨의 정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스포츠월드>의 김용호 기자는 홍씨를 ‘미스 리플리’라 불렀다.
리플리는 미국의 여성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 1955)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리플리는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인물이다.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1960년 작에서는 알랭 들롱이, 1999년 작에서는 맷 데이먼이 주인공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에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한 문화방송 드라마 <미스 리플리>가 방영되기도 했다.
상대방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 또는 거짓 행위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본능이다. 사람은 사소한 거짓말부터 거대한 속임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평균적으로 8분에 한 번씩 하루에 200번이나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도 정신의학은 거짓말이 심해지면 병으로 간주하는데 충동적 거짓말, 습관적 거짓말 그리고 공상허언증 등으로 분류한다. 공상허언증은 거짓말의 가장 극적인 형태로, 스스로 거짓말을 지어내 떠벌리면서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탓에 거짓말 탐지기로도 잡히지 않는다. 홍씨가 경찰에서 “현장에서 들은 뜬소문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발언했다”고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봐서 이 단계까지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리플리 증후군은 사회적 성취욕은 크지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돼 있는 경우 자주 발생한다. 특히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은 도태되고 편법과 반칙이 판치는 사회일수록 수많은 리플리들이 출현한다. 세월호 참사 원인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영락없는 ‘리플리 양성소’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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