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6.09 18:13 수정 : 2014.06.09 18:13

줄행랑이란 원래 ‘대문간에 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문간채’를 뜻한다. 대문의 좌우로 죽 벌여 놓은 종들의 방이다. 요즘은 행랑채를 보기 힘들어서 잘 쓰지 않지만 예전 소설 등을 보면 자주 등장한다. “방 한간씩이 툇마루 반간씩을 줄행랑처럼 지었는데 마루 밑으로 함실 부엌이 있고 밥은 한데서 끓여 먹어야 했다.”(이기영의 <고향>) 이 줄행랑이 어떻게 해서 ‘도망치다’라는 뜻을 갖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다. ‘길게 행랑을 치듯 줄달음을 친다’고 하여 ‘피해 도망가다’는 뜻이 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문간채 행랑과는 관계없이 한자어 ‘주행’(走行)이 변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애초 순수한 우리말로 ‘줄랑’이 도망치다는 뜻이었는데 여기에 한자 행(行)이 첨가된 것이 아닌가 유추하는 학자도 있다.

몸을 빼내 급히 몰래 달아난다는 뜻의 ‘뺑소니’의 어원을 놓고도 설이 분분한데 ‘뺑송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가장 그럴듯하다. 옛적에는 여럿이 모여 놀거나 일하다가 몰래 살짝 빠져나와 도망치는 것을 ‘뺑송이친다’고 했다는 것이다. ‘뺑이’는 빙빙 도는 장난감(나중에 팽이로 표기가 바뀌었다)인데, 여기에 한자 송(보낼 送) 자가 더해져 뺑송이를 거쳐 뺑소니가 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어쨌든 도망치다는 말은 그 앞에 ‘36계’까지 붙어야 더욱 제맛이 살아난다. 고대 중국의 병법 36계 중 마지막인 ‘주위상’(走爲上)은 ‘대적하기 힘든 강한 적과 싸울 때는 도망치는 것도 뛰어난 전략’이라고 말한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36계 전략’ 앞에 검찰이 속수무책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총동원돼 뒤를 쫓고 있는데도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하면서 검거 작업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범죄가 적발되면 일단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며, 다음에는 모르쇠로 부인하고, 마지막으로 ‘빽’을 쓰는 게 좋다는 이른바 ‘일도이부삼빽’이란 말이 이처럼 딱 들어맞을 수가 없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