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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4 18:43 수정 : 2014.09.14 18:43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재위 1740~1786)이 독일 포츠담에 지은 상수시궁 바로 옆에는 방앗간이 있다. 깔끔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이 방앗간을 두고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왕은 방앗간의 덜걱덜걱 돌아가는 풍차가 크게 거슬렸다. 아예 방앗간을 사서 없애려 했더니 주인이 거절했다. 왕이 주인을 책망했다. “짐은 한 푼도 안 주고 뺏을 수도 있다.” 주인도 지지 않았다. “베를린 법원의 판결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화가 난 왕이 방앗간을 허물었더니 다음날 소장이 접수됐고, 결국 법원이 왕의 패소로 판결하는 바람에 방앗간을 다시 지어줘야 했다.

희곡과 동화 등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실은 1856년 프란츠 쿠글러의 책에서 비롯된 가공의 전설이다. 전설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로이센 물레방앗간 사건’에 개입한 일에서 비롯됐다. 물레방앗간 주인 크리스티안 아르놀트가 수세 재판에서 패소한 뒤 1775년 왕에게 탄원서를 내자, 계몽군주라는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인정한 법관의 독립 원칙을 어기고 방앗간 주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명령했다. 이를 무시한 사법부 장관 등을 해임하고 담당 판사도 연금했다. 이런 소동 뒤 프로이센은 군주가 사법 독립을 무시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법관 독립의 효시로 꼽힌다.

전설이든 실제 사실이든 모두 절대권력에 굴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을 희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군주의 위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근대 입헌국가의 ‘신화’일 수도 있겠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두고 말들이 많다. 선거개입이 분명한데도 대통령선거의 정당성이 훼손돼 정권에 부담이 될까봐 억지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는 얘기다. 사실이라면 법관이 선거의 공정성 등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보다 정권의 안녕을 더 중시한 게 된다. 곡학아세일뿐더러 심한 시대착오이기도 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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