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서북청년단 / 김의겸 |
서울광장에 내걸린 노란 리본을 잘라버리려던 이들은 스스로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혔다.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1946년 11월30일 서울 와이엠시에이(YMCA)에 모여서 만든 우익단체로, 해방 공간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활동이 극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47년 삼일절 기념식 뒤의 좌우 충돌 등 테러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우익 진영의 선봉대 역할을 도맡았다. 경교장에 들어가 김구를 살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소속이었다. 대표적인 만행은 제주 4·3 사건에서다. 당시 30만명 정도이던 제주도민 가운데 적어도 3만명이 학살됐는데, 서북청년단이 주도했다.
이들의 대담함은 ‘뒷배’를 봐주는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금의 대부분은 서북 출신 재력가들이 주로 지원했다. 경찰은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1947년 4월 지청천이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면서 서북청년회 해체를 요구했으나, 장택상이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조병옥 또한 치안상의 문제를 들어 서북청년단 해산을 반대했다. 특히 장택상은 서북청년단에 거금 5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제일 ‘큰손’은 이승만이었다. 서북청년단 단원들을 대거 경찰과 군대에 취직시킨 뒤 제주도 등지로 보내 ‘좌익 소탕’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서북청년단원 가운데 군대로 간 이가 6500명, 경찰로 간 이가 1700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승만은 제주 4·3에 대해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말해 서북청년단의 학살을 부추겼다.
2014년의 서북청년단의 마음속에는 과거 선배들이 누렸던 권력을 자신들도 한번 누려보겠다는 ‘완장 심리’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정권의 비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한 세월호 관련 발언이 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