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23 18:46
수정 : 2015.02.23 18:46
연주자가 미간을 좁히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마지막 음을 ‘가능한 한 여리게’(pianissimo possible) 연주하기 위해서다. 그때 느닷없이 박수가 터져나온다. 이른바 ‘안다 박수’다. 자신은 그 곡이 끝날 때를 잘 안다는 박수다. 연주자는 당황하고, 관객은 눈살을 찌푸린다. 과시욕 때문에 마지막 음의 여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배려가 실종된 것이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의 경우 마지막 음이 끝나도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음과 잔향이 공연장 구석구석까지 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럴 때 갑자기 박수나 “브라보”가 터져나오면 정말 난감하다고 한다.
브라보(Bravo)는 이탈리아말로 ‘좋다, 잘한다’라는 뜻이다. 열정을 쏟아낸 연주자, 성악가, 연기자에게 보내는 찬사다. 공연의 주체가 남자일 때 “브라보”를 외치고, 여자일 때 “브라바”(Brava)를 외친다. 발레를 예로 들면, 남성인 발레리노에겐 브라보, 여성인 발레리나에겐 브라바다. 남성에겐 단어 끝에 로마자 ‘o’를 붙이고, 여성에겐 ‘a’를 붙인다. 얼마 전, 아리아와 가곡으로 꾸며진 신년음악회에 갔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와 함께 “브라보”가 터져나왔다. 이어 다른 곡을 마쳤을 때 옆 좌석에서 “브라비”라고 외쳤다. 복수형인 브라비(Bravi)는 공연의 주체가 남녀 혼성이거나 단체일 경우에 쓴다.
하지만 브라비면 어떻고 브라보면 어떠랴. 뭉뚱그려 “브라보”라고 외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돌을 맞는 날이다. 2년 동안 문화예술계 곳곳에 ‘낙하산’이 투하됐고, 문화체육관광부마저 ‘외압 인사’로 만신창이가 됐다.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감독 임명에 오페라단체들은 “청와대 밀실인사”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음악인들이 이렇게 장기간 집단행동에 나선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한민국 객석’은 지금 ‘브라보’는커녕 싸늘하기만 하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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