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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8 19:02 수정 : 2015.03.18 19:02

1926년 일제는 지금의 서울 대학로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 1946년 신설된 서울대가 1975년 이전하기까지 대학로는 젊음과 낭만의 거리였다. 1956년 문을 연 학림다방은 그 상징이었다. 다른 한편으론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다. 1960년대 4·19혁명, 한일협정 반대투쟁, 1970년대 유신철폐 운동이 펼쳐졌다. 하지만 대학로라는 공식명칭은 1966년 서울시가 가로명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이제 대학로 하면 ‘연극’이 떠오른다. 연극의 중심지가 된 것은 1978년 문예회관 대극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지금의 아르코예술극장이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설계한 이 건물 주변으로 극장들이 모여들었다. 명동이나 신촌보다 임대료가 쌌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연극을 올리는 극장은 모두 160여곳이다. 그 가운데 50~300석 규모 민간 극장은 지난해 말 142곳이다. 소극장은 공연기본법에서 ‘500석 이하’라고 규정하지만, 일반적으로 300석 이하를 가리킨다.

대학로 곳곳에는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문구가 붙었다. 그러나 ‘정신적 희망’의 제작소인 극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를 더 감당하지 못해서다. 올 1월 상상아트홀 3개 관이 폐관했다. 건물주로부터 퇴거 요구를 받는 등 곧 문을 닫을 극장도 4~5곳이다. 사지로 내몰린 연극인 150여명은 11일 상여를 메고 “소극장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개관 28년 만에 폐관 위기에 처한 ‘대학로극장’을 구하자는 취지였다. 2004년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한 뒤, 땅값이 오르고 임대료가 치솟았다. 건물주는 용적률 상향 조정과 주차면적 감면의 혜택을 받았지만, 소극장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문화를 살리겠다는 문화지구가 문화를 죽인 셈이다.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는 상여를 멘 다음날 무대에 섰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럭키 역을 맡은 그는 목에 굵은 밧줄을 맸다. 누가 이 밧줄을 풀어줄 것인가.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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