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19 18:52
수정 : 2015.04.19 18:52
예전에 아메리카의 나바호 인디언들은 양심을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삼각형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나쁜 짓을 하게 되면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불편한 것은 이 삼각형이 회전하면서 모서리가 심장 벽을 마구 파헤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양심에 반하는 짓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삼각 모서리는 모두 닳아 없어져 버리고 심장 벽에도 굳은살이 박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어린아이의 양심은 삼각형으로, 어른의 양심은 원형으로 표기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작가 카를로 콜로디는 양심을 귀뚜라미로 형상화했다. 동화 <피노키오>에 나오는 귀뚜라미 지미니 크리켓은 바로 피노키오의 양심이다. 귀뚜라미의 조그만 울음소리처럼 양심은 마음속에 깃든 작고도 미약한 소리라는 비유다. 피노키오는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귀뚜라미를 귀찮게 여겨 발로 밟아 죽이지만 귀뚜라미는 유령이 되어 나타나 “착하게 살라”고 끊임없이 채근한다. “양심은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작은 목소리”라는 <피노키오> 애니메이션 속의 대사는 양심에 대한 명언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이 만화영화를 만든 디즈니사는 귀뚜라미에 대한 높은 인기를 반영해 ‘지미니 크리켓 찾기 게임’이라는 특별 기획상품까지 내놓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관통하는 두 단어는 양심과 앙심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등 관련자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태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앙심 탓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파문의 한편에는 ‘돈만 받고 어려울 때는 외면한 의리 없는 인물들에 대한 앙갚음’이라는 요소도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이 총리 등의 양심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잇따라 드러나고 있는 여러 정황증거를 보면 이들의 심장 속 삼각형은 이미 모서리가 닳을 대로 닳았고, 귀뚜라미도 죽어버린 지 오래된 것만 같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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