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28 18:39
수정 : 2015.04.28 18:39
81년 만에 다시 닥친 네팔 지진은 예견됐다고 한다. 지진 위험을 예측할 과학자의 책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2009년 4월6일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규모 6.3의 강진이 발생해 309명이 숨졌다. 공교롭게도 정부 자문단이 라퀼라를 방문해 큰 지진의 위험이 없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자문단은 한 비전문가가 라돈가스 배출량으로 큰 지진을 예고해 시민을 공포에 몰아넣자 파견됐다. 자문단장은 회의를 열기도 전에 “작은 진동은 큰 지진으로 이어질 에너지의 분출을 도와준다”는 비과학적 발언을 했다. 심지어 “이제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셔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다. 자문회의는 겨우 45분 동안 열렸다. 자문단의 과학자 6명 중 4명은 바로 자리를 떴다.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한 의사가 자문단을 고소했고, 1심에서 자문단 모두에게 과실치사죄가 적용돼 6년형이 선고됐다. 과학계는 제2의 갈릴레오재판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자문단장의 방송 인터뷰를 보고 피난처에서 집으로 돌아와 숨진 사람만 29명에 이른다. 재판부는 잘못된 예측 때문이 아니라 성실하게 위험 진단을 해야 할 자문단의 ‘태만과 경솔’을 유죄 사유로 들었다. 갈릴레오도 지동설 때문이 아니라 성경과 다른 내용이면 교황청에 알리도록 돼 있는 보고 의무를 어겨 재판에 회부됐다.
월성원전 1호기를 수명 연장해도 안전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1~3월 세 차례에 걸쳐 34시간27분 동안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한 위원은 토론에 거의 참여하지 않다가 막판에 ‘투표로 결정하자’는 발언만 했다. 3차의 속기록 문자 수는 61만5천자로, 이 위원의 발언은 0.24%(1500자)에 불과했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2013년 11월부터 3월17일까지 34차례 회의를 열었는데, 한 위원은 17번, 다른 위원은 16번 참석하지 않았다. 또 다른 위원은 25차 동안 16번 회의에 불참한 끝에 중도하차했다. 라퀼라 재판은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곱씹게 한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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