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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3 18:44 수정 : 2015.06.23 21:18

거부권을 뜻하는 ‘veto’는 라틴어로 ‘나는 금지한다’라는 의미다. 거부권은 권익 투쟁의 과실이다. 로마 공화정 초기 귀족들의 횡포에 무방비로 당하던 평민들은 기원전 494년 일제히 도시를 떠나 로마 근교의 성산(Monte Sacro)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른바 ‘평민의 철수’(Secessio plebis)다. 극단적인 총파업으로 도시가 마비되자 귀족들은 사자를 보내 협상을 벌였고, 평민회 설치와 호민관 선출 등에 합의했다. 호민관은 집정관이나 원로원의 결정이 평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민회에 법안이 부의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로마는 다섯 차례 벌어진 ‘평민의 철수’를 거치면서 평민의 권리를 확립했다.

미국 연방헌법의 법률안 거부권 제도는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대통령의 ‘유일한 방어수단’으로 고안됐다. 미국형 대통령제에선 의회의 입법권에 대한 행정부의 간섭은 허용되지 않는다.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는 역할만 맡도록 설계돼 있다. 헌법 기초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의회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면 행정부가 집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주지사에게 법률안 거부권이나 개정권을 줬던 1777년 뉴욕주 헌법과 매사추세츠주 헌법을 참고해 거부권 제도가 만들어졌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주면서 거부권까지 함께 부여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헌법 제정 당시에도 “모든 권력을 대통령에게 주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지금까지 64건인 거부권 행사가 여소야대였던 제헌국회와 제2대, 제13대, 제16대 국회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주로 국회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방침은 그렇게 여소야대도 아닌 터에 여당 지도부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초유의 일이다. 국민 권익과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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