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12 18:42
수정 : 2015.07.12 18:42
중부지방의 오랜 마른장마 끝에 너무 큰 단비가 왔다. 제9호 태풍 ‘찬홈’이 몰고 온 집중호우도 장마일까? 장마는 기상학적으로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것’을 의미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온 것이니 장맛비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장마철에 온 비는 모두 장마기간 강수량으로 잡힌다. 지난해에는 남부·중부지방에서 평년보다 8~9일 장마가 늦게 시작되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평년 대비 강수량이 40% 안팎으로 적어 분명 마른장마였다. 올해도 체감으로는 마른장마다. 중북부지방에 닥친 ‘100년 만의 가뭄’은 지난달 25일 장마가 시작됐음에도 좀체 가시지 않았다. 이번 태풍이 지나고 나면 당분간 비는 꿩 구워 먹은 소식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태풍 덕(또는 탓)에 강수량이 한꺼번에 치솟아 올해 장마는 마른장마로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간이 느끼는 날씨와 전문가들이 다루는 기상현상의 괴리는 장마라는 말 자체에 들어 있다. 생활용어의 장마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이거나 ‘여름철에 여러 날 비가 내리는 날씨’이다. 기상학자들이 보통명사인 장마를 고유한 기상학적 현상에 준용하다 보니, 마른장마라는 형용모순의 말부터 봄장마·가을장마 같은 곁가지 말들이 생겨났다. 일본과 중국이 장마를 각각 ‘바이우’ ‘메이위’라고 부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는 양쯔강 유역에 매실이 익을 때 내리는 비를 가리켜 메이위(梅雨)라 했다. 일본도 오월우(五月雨)라 하던 것을 에도시대부터 바이우라 하고 있다.
기상학자들이 국어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밝혀낸 바를 보면 장마는 옛말 ‘오란비’가 16세기 중반 이후 한자(장·長)와 고유어(맣=비)의 합성어로 바뀌었다. ‘맣’은 고산 윤선도가 유배당한 현실을 궂은 날씨에 빗대 지은 ‘하우요’(夏雨謠, 1642년 작)에도 나온다.‘마히 매양이랴 잠기 연장 다스려라’(장마가 마냥이겠는가 쟁기와 농기구들을 준비해두거라)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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