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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9 18:48 수정 : 2015.07.19 18:48

유대인들의 구전 율법 해석을 문서화해 나중에 <탈무드>를 이룬 ‘미슈나’(Mishnah)는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형은 무효”로 정했다. 그 구조는 이렇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재판에선 재판관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처음부터 피고의 무죄를 변론하도록 했다. 재판관들은 유죄에서 무죄로 견해를 바꿀 수는 있었지만, 무죄에서 유죄로 바꿀 수는 없었다. ‘만장일치 무죄’는 가능해도 ‘만장일치 유죄’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피고인의 이익’을 앞세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 의견뿐인 재판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겠다.

만장일치는 조직 건강의 위험신호다. 피터 드러커는 “어떤 조직에서든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뤄진다면 비정상”이라며 “만장일치란 사실에 반대되는 현실, 형편에 맞는 현실로부터 시작해버린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심리학자들은 ‘응집력이 높은 집단’이 만장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집단사고’다. 서로 다른 교육적·직업적 배경에서나 가능한 인지적 다양성이 없는 집단이 외부와 고립돼 충분한 토의도 못하면 곧잘 그런 집단사고에 빠진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6일 국가정보원 댓글공작의 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기 환송했다. ‘13 대 0’이다. 원심이 44쪽에 걸쳐 제시한 논리는 전혀 반박하지도 않은 채, 불과 한 쪽으로 ‘이렇게 보인다’며 원심을 깼다. 소수의견은 물론 보충의견 등 ‘이견’은 아예 없으니, 애초 소부에서 전원합의체에 넘길 일도 아니었던 듯하다. 역사적 정당성을 찾을 수 없으니, 미국 연방대법원이 흑백 분리교육 금지 등 몇몇 역사적 판결에서 만장일치로 판결의 정당성을 분명히 하고 논란을 막으려 한 것을 흉내 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보다는 비슷한 이들이 이심전심으로 이룬 집단사고의 결과로 봐야 할 것 같다. 자기복제의 비극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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