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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05 18:34 수정 : 2015.08.05 18:34

경기관찰사 심이지는 1783년 왕에게 올린 장계에서 “7월 초사흘 진시부터 비(우택·雨澤)가 계속 뿌리다가 사시가 되어서야 그쳤는데, 내린 비가 거의 1서(鋤)가 넘었고, 논밭의 각종 곡식은 물기를 머금은 효과가 뚜렷하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기상청이 최근 발간한 <정조 임금께 아뢴 경기관찰사의 농사와 측우기 기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서’는 호미를 뜻하며, ‘호미 깊이만큼’ 비가 내렸음을 말한다.

벼는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높아 인구 부양 능력이 주식작물 가운데 가장 높다. 한반도는 수도작(논벼)을 할 수 있는 지형이지만 동남아 지역처럼 물이 충족하지는 않았다. 하여 하늘에서 오시는 비는 ‘우택’이었다. 비의 ‘은택’(恩澤)이라는 뜻으로 지방관이 강우 보고를 할 때 사용했다. ‘패택’(沛澤)이라고도 했으니, 비가 흠뻑 내려 늪처럼 된 땅 모양을 가리킨다. 조선 초기 우택은 주로 ‘호미 또는 쟁기가 들어갈 정도’라고 보고돼 정확도가 낮았다. 세종 23년(1441년) ‘구리를 부어 만든 그릇’으로 재기 시작한 뒤에 분·촌·척 등 단위의 명징한 강우량이 기록됐다. 이 그릇은 ‘측우기’라는 이름을 얻는다.

비도 시기별로 이름이 달랐다. 정월에 오는 비는 해동우, 3월에는 파종우, 4월 못자리비(입묘우·立苗雨)라 했다. 5월10일께 오는 비는 태종이 ‘하늘에 고해 단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유언한 뒤 승하한 다음날 비가 왔다 하여 태종비라 부른다. 또 가뭄 끝에 단비는 ‘희우’(喜雨)라 했다.

비는 곧 나라 경제의 원천이어서 가물면 기우제를 차례로 강도를 높여가며 1차에서 12차까지 지냈다. 태종 때 개국공신인 김을보는 기우제를 지낼 때마다 운 좋게 비가 내려 ‘때맞춰 오는 비’라는 뜻의 ‘승주’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제13호 태풍 ‘사우델로르’가 중국에 상륙했다 돌아나오면 한반도에 비를 뿌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폭염과 열대야 행진에 지친 시민들에겐 ‘우택’이 될지 모르겠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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