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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3 21:52 수정 : 2015.09.13 21:52

영어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영국의 흥망성쇠와 함께 발전해왔다. 게르만어를 어원으로 하지만 영어에는 독일어·스칸디나비아어 등 게르만 계통 어휘가 35%인 반면 로마에 뿌리를 둔 로망어(로맨스어) 계통이 55%에 이른다. 노르만 정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기인한다. 한 국내 대학 연구자가 1961년 미국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문에 나오는 458개의 단어를 분석한 결과 46% 이상이 로망어인 라틴과 프랑스어 어휘들로 구성돼 있었다.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393개 글자 중 한자어는 151자로 38%에 이른다. 품사별 분류에서도 케네디 연설문이 전치사·접속사·조동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문장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품사는 거의 영어 본래의 요소로 성립돼 있듯이, 국민교육헌장에도 조사나 어미, 접속사 등은 거의 다 우리말로 돼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영미권에서 교과서에 라틴어나 프랑스어를 병기하지 않듯이 우리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글전용은 역설적이게도 독재정권 시절인 1970년에 도입돼 모든 교과서에서 한자가 일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세종대왕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문은 세종문화회관의 작명에서 풀렸다. 순수하지 않은 정책은 동티가 나기 마련이다. ‘어니언스·바니걸스’는 ‘양파들·토끼소녀’가 돼야 했고 아나운서들은 ‘볼카운트’를 ‘던진셈’으로 중계해야 했다. 박정희 정권은 한자병기론자들의 압력에 밀려 1975 중등과정에 한자병기를 부활시킨다.

당시 한자병기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한자를 배우면 개방 뒤 중국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화장실에 적혀 있는 ‘請卽沖水’(사용 뒤 물을 내려주세요)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갈릴레오 사후 100년 만에 지동설이 지배하게 된 것은 천동설 신봉자들이 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죽었기 때문이란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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