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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약사여래와 ‘아픈 남자들’ / 김종구 |
약사여래는 아픈 이들의 병을 치유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다. 그의 이름을 외우고 가호를 빌면 모든 재액이 소멸하고 질병이 낫게 된다는 약사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약사여래불은 우리나라에서 아미타불, 미륵불 등과 함께 매우 인기 높은 부처로 자리잡았다. 약사여래불은 대개 한 손에 약병이나 약함, 약단지 등을 들고 있는 모습인데, 최근 건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약사대불이라는 서울 능인선원의 약사여래불 좌상도 왼쪽 손바닥 위에 약함을 올려놓고 있다. 기도발이 영험하다고 소문나 입시철이 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신도들이 모여드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도 모양은 다소 다르지만 역시 약사여래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3일 능인선원에서 열린 법회에서 입을 모아 “마음과 몸이 많이 아프다”고 말한 것이 화제다. 아프지 않은 중생이 어디 있으랴마는 여야 대표들은 왜 아프다고 하는 걸까. 미국의 철학자이자 의사,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잠재력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프게 된다”고 말했다. 사위 마약 투여 사건, 재신임 파문 등으로 대권을 향한 잠재력이 잠식되는 것이 아픔의 원인일까. 불교에서도 괴로움(苦)의 원인은 끝없는 애착과 집착이라고 했다. 어쨌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지금은 ‘아프니까 당 대표’ 시대인 모양이다.
약사여래는 단순히 병만을 고치는 부처가 아니다. 약사여래가 한 12대 서원을 보면, 모든 중생이 폭군의 악정과 강도 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을 비롯해,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이 충분한 음식물을 섭취하고, 가난해 헐벗은 이들이 좋은 옷을 마음껏 입게 하는 등 중생을 안락하고 평안하게 하려는 서원이 망라돼 있다. 속세의 세계에서 이런 약사여래 역할을 할 사람들은 바로 정치인들이 아닐까. 여야 대표들은 지금 자신들의 아픔을 신경 쓰기에 앞서 이 땅의 아픈 중생들을 보듬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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