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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3 18:32 수정 : 2015.10.13 18:32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어물전 좌판에 놓인 생선이 아니라 대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어떤 바다에서 어떤 도구로 물고기를 잡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역사가가 결정할 문제다.” 역사가가 지닌 입장과 관점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역사 연구 내용을 충분히 이해·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가의 정치적 입장부터 연구하라”는 말이 더 유효할지 모른다. 조선시대에는 당쟁이 본격화하면서 실록의 내용을 둘러싸고 ‘집권파에 유리하고 반대파에 불리하게 기술됐다’는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광해군 시절 북인 출신인 기자헌, 이이첨 등이 주축이 돼 <선조실록>을 편찬했으나 공정성 시비가 이어지다가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한 뒤 재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효종 때 마무리된 게 <선조수정실록>이다. <현종개수실록> <경종수정실록> 등이 편찬된 것도 같은 이유다.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는 역사교과서에서 ‘무신난’ 정도로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갔던 고려사의 한 시기가 박정희 정권 아래서 ‘무인정권시대’로 명명되고 분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군사정권의 동류의식’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대통령부터 연구하라”는 말을 해야 할 형편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아버지 시대의 치부를 가리고 미화하려는 뜻이 있음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후세 역사가가 나를 정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유감스럽게도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그런데 그는 ‘역사가들을 움직여 엉터리 역사책을 만드는 잘난 딸’을 두었다. 지하에 있는 고인에게는 행운일지 모르지만 이 시대 한국인,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크나큰 재앙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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