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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괴질 / 여현호 |
“평양부 성 안팎에 지난달 그믐 사이에 갑자기 괴질(怪疾)이 유행하여 토사(吐瀉)와 관격(關格)을 앓아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일 동안에 1천여명이나 되었습니다. 의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습니다.” 순조 21년(1821년) 8월13일 실록에 실린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다. 이듬해까지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은 ‘괴질’이 콜레라 또는 ‘호열자’(虎列刺)란 이름을 얻은 것은 서양의학 지식이 들어온 개항 이후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 특히 전염병은 처음에는 모두 괴질이었다. 541년 콘스탄티노플 시민 6만여명을 죽게 하고 라인강을 넘어 유럽까지 번졌던 괴질은 당시 동로마제국 황제의 이름을 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으로 불렸다. 최근에야 독일 아슈하임에 매장된 6세기 유골 2구의 치아에서 14세기 유럽 흑사병 때와는 다른 계통의 페스트 원인균 ‘여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게놈을 확인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도 원인균이 발견된 1980년대 초까지는 괴질이었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도 2003년 발생 때는 괴질 혹은 비정형 폐렴으로 불렸다. 한국에서도 1975년 이후 잇따라 발생한 농촌 괴질 또는 유행성폐출혈열이 1984년에야 렙토스피라증으로 확인됐다.
공포는 모를 때 커진다. 2011년 4월 유아와 임산부 등이 원인 미상의 호흡곤란과 급속한 폐 손상으로 잇따라 사망했던 사건은 그해 8월 괴질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지면서 대책을 찾을 수 있었다. 4월 나이지리아에서 며칠 사이 18명이 숨진 괴질이 결국 다른 무엇도 아닌 제초제 중독으로 밝혀진 일도 있다.
최근 건국대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의 환자가 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발생 초기에 새로운 질환인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두려워해선 안 되겠지만, 적어도 필요한 정보는 신속하게 확인되고 전달되어야 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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