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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악의 축’과 ‘북한 사상 지배’ / 김종구 |
2002년 1월19일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지칭해 사용한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표현은 연설문 작성팀의 데이비드 프럼이 만들어낸 말이다.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표현을 찾기 위해 그가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뒤인 1941년 12월8일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연설이었다고 한다. 애초 생각해낸 표현은 ‘증오의 축’(axis of hatred)이었는데 연설문 작성 총책임자인 마이클 거슨이 이를 악의 축으로 고쳤다. 진주만 기습공격과 9·11 테러를 상징적으로 연계시키고,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악에 대한 선의 응징으로 은유화한 것이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과 권력>에서 이 표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아들 부시의 역사적 과오를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 화제다. 그만큼 악의 축이라는 말은 최근에 나온 미국 외교정책의 레토릭에서 가장 큰 실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라크 침공이 결국 실패한 전쟁으로 끝났다는 점뿐 아니다. 당시 미국과 이란은 공동의 적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대항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비밀리에 모색하고 있었으나 악의 축 연설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아프간 주재 부대사였던 라이언 크로커는 훗날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이란 간 협력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이란의 태도 변화 가능성마저 차단해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부시 주변 참모들이 나름대로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내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재치있는 표현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통일 후 북한 사상에 지배당할 수 있다”는 등의 엉뚱한 말을 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당화할 논리가 아무리 궁색하다고 해도 대통령이 그런 상식과 동떨어진 말을 계속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청와대 대통령 연설 관리팀의 직무유기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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