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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정치와 치정 / 손준현 |
예술계가 ‘정치 검열’ 파문으로 떠들썩하다. 청와대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인사 개입 논란, 국립오페라단의 부적격 예술감독 임명, 서울연극제 대관 취소, 부산영화제 예산 삭감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사업 검열과 포기 종용, 예술위 산하기관의 ‘팝업씨어터’ 공연 방해, 국립국악원의 박근형 연출 배제 요구 등 ‘정치 검열’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부르짖는다. 현재로선 슬로건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오죽하면 예술계에서 문화부를 ‘문화파괴부’라고 부를까.
예술가에게 ‘검열’은 그들의 무기인 표현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번 ‘정치 검열’ 파문에 항의하는 이들을 ‘정치적’이라고 재단한다. 그러면, 검열 사태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과연 비정치적일까? 이번 사태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일단 제외하자. 그렇다면, 문제는 있지만 ‘나서기 싫어’ 가만히 있거나, 나아가 ‘앞으로 공연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침묵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 경우 예술가는 검열에 항의하는 예술가보다 더 정치적일 수 있다. ‘검열의 내면화’가 불러온 ‘비정치적 정치’의 쓸쓸하고 황량한 내면 풍경이다. ‘비정치적 작품’을 내놓아야 하는 ‘정치성’에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안산순례길>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예술위의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사실이 공개됐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성찰하자는 취지의 이 퍼포먼스는 윤한솔이 연출했다.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찍힌’ 그가 이번엔 연극 <치정>을 연출했다. ‘치정’은 사전에서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이라고 정의한다. 남녀관계라는 수식어를 빼면, 법과 제도의 틀을 벗어난 일탈이라는 점에서 ‘정치 검열’과 ‘치정’은 어감만큼이나 닮았다.
손준현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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