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2.02 18:38 수정 : 2015.12.03 11:50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스프라울 광장엔 폭 1.8m짜리 둥근 원 모양의 조형물이 바닥에 깔려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원의 가장자리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원 안의) 땅과, 우주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어느 국가에 속하지도 않고 어느 기관의 사법적 관할을 받지도 않는다.’

조형물의 이름은 ‘표현의 자유 공간’(Free Speech Circle)이다. 이 원 안에선 누구든지 정치적 탄압이나 경찰의 개입, 법적 처벌의 우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의 시초인 버클리대 ‘표현의 자유 운동’ 25주년을 기념해 1989년 만든 기념물이다. 원형의 조형물 아이디어를 처음 낸 마크 브레스트 밴 켐핀은 “지상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관할권이 미치는 고도 18㎞까지 치외법권 지역을 설정했다. 그래서 이 조형물을 ‘보이지 않는 표현의 자유 기둥’이라고도 부른다”고 말했다.

1964년 가을 버클리대 스프라울 광장에 몇몇 학생들이 테이블을 설치하고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하는 서명을 받았다. 그때까지 미국 대학에서 학내 정치활동은 엄격히 금지됐다. 학생들의 행동은 학교당국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학생들은 시위와 농성으로 맞섰고, 경찰 진입과 유혈충돌로 이어졌다. 1960년대 미국 대학가를 휩쓴 학생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물론 이 원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이젠 원 바깥에서 어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도 학교당국이나 경찰이 간섭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옹호하거나 인종차별적 발언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원이 필요한 건 한국이다.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구속하고 복면을 썼다고 테러리스트로 몰아버리니 말이다. 학술 저작을 검찰권으로 재단해 대학교수를 기소한 것도 마찬가지다. 광화문 광장에 둥근 원이라도 하나 그려야 할 것 같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유레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