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위대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 / 손준현 |
독재에 맞서 수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1989년 10월9일 옛 동독의 라이프치히, 7만여명의 민주화 함성이 거리를 울렸다. 경찰은 무력진압을 잔뜩 별렀다. 그때 1884년 문을 연 콘서트홀 ‘게반트하우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당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시위대에게 홀을 피신 장소로 내준 것이다. 시민들에겐 비폭력 시위를 호소했다. 같은 해 6월 중국의 ‘천안문 유혈진압’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발원한 민주화 운동은 독일 분단의 상징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렸다. 이미 신뢰받는 예술가이던 그는 독일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그는 ‘위대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다.
라이프치히 시위 1년 뒤인 1990년 10월3일, 독일통일 기념식에서 마주어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했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Alle Menschen werden Brueder)라는 대본이 현실에서 큰 울림을 가진 순간이었다. 마주어는 초대 대통령감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인 역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1년 마주어는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지휘자의 길을 계속 걸었다.
쿠르트 마주어가 19일(현지시각) 88살로 타계했다. 지난해 1월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해 7월 로린 마젤에 이어 마주어마저 세상을 뜨면서 ‘거장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뉴욕필은 “2002년까지 21년간 뉴욕필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이후 명예 음악감독을 맡아온 마주어가 타계했다”고 발표했다. 마주어는 “지휘자의 역할은 변화이며, 그것이 오케스트라를 강하게 만든다”고 말할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음악세계를 이끌었다. 그는 독일 십자훈장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내한 공연을 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