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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3 18:43 수정 : 2015.12.24 08:33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1912년부터 1915년까지 3년 남짓 영국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만나 ‘절친’이 된 사람이 뒤에 ‘전쟁시인’이란 칭호를 얻은 에드워드 토머스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산길을 산책하며 우정을 키워갔다. 1915년에 프로스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토머스에게 시 한 편의 초고를 보냈다. 토머스가 산책하면서 보인, 망설이는 특성을 가볍게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조국을 위해 참전할지를 놓고 번민하던 토머스는 그 시에 자극받아 군에 입대했고, 결국 2년 뒤 북프랑스 전선에서 사망했다. 그 시가 바로 ‘가지 않은 길’이다. 숲 사이에 난 두 개의 길이라는 우화적인 상황을 통해 삶의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이 유명한 시는 그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프로스트는 훗날 독자들이 너무 자신의 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유감을 표시하곤 했다. 1961년에는 “그 시는 속임수 시”라고 말한 적도 있다. 독자들이 자신의 시에 너무 과대한 의미를 부여해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2008년에 프로스트 전기를 펴낸 브라이언 홀은 “프로스트의 시는 사실은 하찮은 결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망설임에 대한 코멘트”라며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든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법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잡지 <슬레이트>의 부편집장 데이비드 해글런드는 “프로스트는 일부러 독자들을 오도해놓고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잘못 해석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최근 트위터에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올렸다고 한다. 탈당과 잔류의 두 갈래 길에서 탈당을 선택한 것에 아무런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가 선택한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을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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