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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무력시위 / 여현호 |
중국 허베이성 청더(옛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은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1780년)의 ‘막북행정록’ 머리말에서 “피서산장이라 이름해 독서로 소일하고 숲과 내를 거닐며 세상 밖에서 한낱 평민의 생활에 취미를 두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험악한 지세를 이용해 몽골의 목구멍을 막는 동시에 북쪽 변방 깊숙한 곳에서 천자 스스로 오랑캐들을 방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강희제는 별궁 축조에 앞선 1683년 열하 북쪽 150㎞의 무란(木蘭·목란)에 군사훈련 및 사냥 장소인 ‘목란위장’을 설치했다. 열하일기 당시의 건륭제도 매년 9~10월 베이징·항저우·난징·시안에 있던 1만명 이상의 팔기군을 이끌고 무란으로 3주 동안의 대규모 사냥을 떠났다. 일종의 연례 무력시위다.
신라의 우산국(울릉도) 정벌은 무력시위가 결정적 효과를 발휘한 경우다. 512년 아슬라주(지금의 강릉) 군주였던 이사부(김태종)는 군선 뱃머리에 나무 사자를 싣고 와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밟아 죽이겠다”고 위협해 사자를 처음 본 우산국 사람들을 굴복시켰다고 <삼국사기>가 전한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나흘 만에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가 한반도 상공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에도 B-52 등 전략무기가 출동했다. 그때마다 한반도의 긴장은 높아지지만 기대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스스로 핵보유국이라 주장하는 북한은 남한이나 미국이 핵 때문에라도 대규모 전면전을 각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소규모 재래전이나 이런저런 도발은 되레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정-불안정의 역설’이다. 그 때문이 아니라도 고답적인 강경 일변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청나라도 피서산장 주위에 8곳의 라마교 사원 ‘외팔묘’를 지어 변방민족 포용 정책을 병행한 터다. 지레 겁을 먹을 북한도 아닌 듯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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