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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8 19:58 수정 : 2016.03.28 20:08

살풀이춤은 예기들이 추던 기방의 춤이다. 오늘날 살풀이춤은 하얀 명주 수건을 들고 추지만 원래 맨손이었다. 무대화하면서 점차 수건을 들고 추는 춤으로 바뀌었다. 지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수건을 들고 추는 춤이다. 그런데 1980년대 명무전에서 옛 명인들이 예전대로 수건을 들지 않고 무대에 나서자, 그 옛 춤꾼의 춤을 민살풀이춤이라고 따로 부르게 된 것이다. 무늬 없는 것을 ‘민’ 자를 붙여 표현하듯, 수건을 들지 않았다고 민살풀이춤이라 한 것이다.

민살풀이춤의 명인 조갑녀(1923~2015)의 아버지는 권번의 기악 선생이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곱 살에 자연스레 남원 권번에 입적해 공부했다. 조 명인은 악가무일체(樂歌舞一體) 예인교육을 엄격하게 배웠다. 민살풀이춤의 스승은 궁중에서 춤을 가르치던 종구품의 참봉 이장선이었다. 열세 살 무렵 남원에서 강 이편에서 출발해 저편까지 다리 위에서 승무를 추었다. 한가운데에선 법고를 쳤다. 하지만 결혼 뒤 춤판에서 물러났다. 1998년 명무초청의 밤 공연 때 그를 무대에 세우려고 수소문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흐른 2007년 우여곡절 끝에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어머니의 춤> 무대에 섰다. 나이 든 예기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장선 춤의 마지막 뿌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남원 사람들이 말하던 ‘춤은 조갑녀’란 말이 다시 춤판에 회자했고 곧바로 ‘조갑녀류 민살풀이춤’이란 말도 생겨났다.

진옥섭 한국문화의집(KOUS) 예술감독은 “찾았던 명무 중에서 가장 깊이 숨은 명무다. 흉곽을 드르륵 열고 심장을 덥석 쥐는 그 5분”이라며 조갑녀의 민살풀이춤에 찬사를 보냈다. 조갑녀 명인의 1주기를 맞아 다음달 5일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에서 예인열전 <조갑녀>를 무대에 올린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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