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레카] 한국은행 흑역사 / 박순빈 |
한국은행이 10일 창립 66주년 기념식을 했다. 원래 6월12일이 공식 기념일인데 일요일이어서 이틀 앞당겼다. 그런데 왜 한은의 나이가 대한민국 정부보다 5년이나 늦을까?
엄밀히 따지면 한은의 나이는 105살이다. 한은의 전신은 조선은행이다. 애초 일본 국립제일은행의 조선지점이었는데,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다음 해인 1911년 조선은행법을 공표하면서 근대식 중앙은행으로 재탄생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 산하기관이었던 조선은행은 조선의 경제부흥보다 식민지 수탈과 대륙 침략을 뒷받침해주는 첨병 구실을 했다. 광복 후 식민지 금융체제의 청산이 절실했으나 미군정에 의해 조선은행의 중앙은행 지위는 계속 유지됐다. 그러다가 1950년, 미국 고문단이 기초를 잡은 한은법이 제정되면서 ‘조선’이라는 간판이 ‘한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초기 한은의 자산과 부채, 인적 구조, 주요 의사결정과 업무 관행 등에는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돈줄을 쥐고 있으면서 최고 권력자와 행정부의 입김에 짓눌렸다. 독립된 나라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중앙은행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때 ‘뒷돈’을 대준 일로, 4·19 혁명 뒤 한은 수뇌부가 무더기 구속된 사례도 있다. 5·16 군사쿠데타 뒤에는 독립성이 더욱 구겨졌다. 박정희 임시 군정은 1962년 한은법 개정을 통해 금융통화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재무부의 한은 검사권을 신설해 통화신용 정책 권한을 틀어쥐었다. 이에 반발해 당시 민병도 한은 총재가 “금융의 중립과 민주화를, 혁명정부가 민정 이양에 앞서 이뤄놓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연 뒤 돌연 사퇴했다. 비장한 항변이었으나 은행감독권을 한은이 유지하는 정도로 반발은 무마됐다. 지금의 한은 수뇌부는 이런 결기조차 없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