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4 20:44
수정 : 2016.06.15 10:25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공식 모토인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따온 말이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謨士)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리라’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이다. 그리스 국가정보청은 기원전 7세기 코린토스의 참주이자 ‘그리스 7현인’의 한 사람인 페리안드로스의 말인 ‘비밀스러운 일을 토론하지 말라’를 모토로 삼았다. 나라의 특성에 따라 신약성서, 구약, 조상이 남긴 종교·철학적 글귀를 정보기관의 모토로 삼은 게 흥미롭다.
라틴어파도 있다. 영국 비밀정보부(MI6)는 ‘언제나 비밀’이라는 뜻의 ‘Semper Occultus’가 모토다. 지금은 해체된 이탈리아 군사정보보안국의 구호도 라틴어에서 온 ‘Arcana intellego’(비밀을 이해한다)였다. 체코 비밀정보국의 모토인 ‘Audi, Fide, Tace’(듣고, 보고, 침묵하라)는 가장 잘 만든 정보기관 모토로 꼽힌다. 라틴어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안보정보보안국의 ‘예지력을 통한 평화와 안전’도 정보기관의 임무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성을 강조하는 파도 있다. 러시아 총정보국(GRU)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행동 속에 위대한 조국’이 모토이고,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는 ‘당에 충성, 조국에 충성’이었다. ‘정예간부들은 당에 충성해야 한다’는 중국 국가안전부도 비슷한 흐름 속에 있다. 인권침해로 유명한 방글라데시 보안정보부는 구호부터 ‘나라를 위해 주시하고 들으라, 국가안보 수호를 위해’로 자못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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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보기관의 모토 이미지. 왼쪽부터 영국의 비밀정보부, 이스라엘의 모사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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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원훈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또 바꾸었다고 한다. ‘수호’니 ‘영광’이니 하는 촌스러운 단어들이 들어간 것도 영 마뜩잖지만, 원훈을 바꾼다고 해서 국정원이 정치개입과 인권유린의 덫에서 벗어나 프로페셔널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것 같은 기대도 별로 들지 않는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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