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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살찐 고양이법’ / 여현호 |
1900년 설립된 트뤼볼은 허브 치약 등 욕실용품을 생산하는 건실한 가족회사다. 스위스 북동부 샤프하우젠 주의 지방기업이지만, 스위스에어에 납품한다는 자부심이 컸다. ‘날아다니는 은행’이라고 불릴 정도로 탄탄했던 스위스에어가 2001년 9·11 테러 뒤 세계적 항공수요 침체로 위기에 빠지면서 53만7천달러 규모의 납품 계약을 취소하자 트뤼볼도 부도 위기에 처했다.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트뤼볼은 2005년 루프트한자가 스위스에어를 인수하면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 당시 스위스에어의 최고경영자였던 마리오 코르티가 인수합병 뒤 1300만달러 규모의 거액 퇴직금을 받는 것을 보고, 고생 끝에 트뤼볼을 살려낸 토마스 민더는 격분했다. 그는 2008년부터 전국적인 캠페인에 나섰고, 2011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제한하자는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기업 내 최고임금을 동일 기업 내 최저임금의 12배로 제한하자는 법안은 부결됐지만,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고 퇴직 뒤 거액의 특별보너스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은 68%의 찬성으로 2013년 가결됐다. 거대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최고경영자가 퇴직 뒤 경쟁사에 취업하지 않는 조건으로 7600만달러를 받는다는 사실이 마침 알려지면서, ‘살찐 고양이’, 곧 부당하게 거액의 보수를 챙기는 기업가들에 대한 반발이 확산된 탓이다.
‘살찐 고양이법’은 스위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해당 기업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임금상한 규정을 2012년 이미 법제화했다. 이 법에 따라 프랑스 공기업 경영자의 보수는 2012년 기준으로 45만유로를 넘지 못하게 됐다. 미국은 2010년 만든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법의 후속 조처로, 2017년 1월 회계연도가 시작할 때부터 최고경영자 급여가 해당 기업 일반직원 보수 중간값의 몇 배인지를 재무제표처럼 공개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로 지난해 8월 확정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는 피터 드러커가 이미 1986년 <프런티어의 조건>에서 “고위경영자의 금전적 보상은 월급이 가장 적은 직원의 20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터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와 그 기업에서 월급을 가장 적게 받는 직원의 연봉 격차가 12.14배 정도면 수긍하겠다는 조사 결과(2013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서베이조사연구센터, 전국 2만1050명 조사)가 나와 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달 27일 민간기업 임직원은 최저임금의 30배, 공공기관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가 넘는 급여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최고임금법안을 발의했다.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로 주목할 만한 제안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최고경영자 보수가 일반직원 임금 평균값의 수백배에 이른다. 최저임금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클 것이다. 회사가 적자를 기록한 동안에도 수십억, 수백억원을 챙긴 경영진이 수두룩하다. 조선산업 부실을 키운 산업은행의 홍기택 전 회장과 수출입은행의 이덕훈 행장이 지난해에만 각각 1억8천여만원과 1억400여만원의 성과급을 받은 것도 비난을 받기에 족하다. 임금격차와 임금상한제에 대해 제대로 논의를 시작해볼 만한 때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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