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19 16:18
수정 : 2016.07.1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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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도시 엑서터에 자리한 영국 기상청(Met Office)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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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를 예측하는 기상학의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문집 <기상론>(메테오롤로지카)이다. 메테오르(meteor)는 그리스어 ‘메타’(meta·영어의 beyond)와 ‘에오라’(eora·영어의 suspension)에서 유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논문집에서 비·눈·우박·바람·천둥·번개에서부터 혜성·은하수에 이르기까지 ‘저편 공중에 있는’ 현상을 다뤘다.
구름이나 하늘의 상태로 날씨를 예측하는 천문기상학은 19세기 말 장거리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적인 일기도 기반의 근대 예보기술로 전환됐다. 그날의 날씨를 미리 알려주는 일기예보는 1861년 영국기상청 초대 청장인 로버트 피츠로이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서 진화론을 잉태할 당시 타고 간 비글호의 선장으로, 영국 해군 제독 출신이다.
몽골군의 일본 정벌 실패, 스페인 무적함대의 영국 침범 좌절,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패배 등은 날씨를 몰라 역사가 달라진 경우다. 근래에는 기상예보를 이용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 사건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연합군은 애초 1944년 6월5일을 상륙 날짜로 잡아놓았지만, 기상장교들은 한랭전선이 5일 상륙 예정지를 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이젠하워는 공격 시각을 24시간 연기했다. 반면 독일 예보관들은 5일 날씨가 연합군의 상륙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여전히 불안정한 6일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기치 못했다.
영국 속담에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두 가지는 남녀 간 사랑과 영국 날씨”라는 말이 있다. 피츠로이가 선보인 일기예보는 불행하게도 틀렸다. 기상학자와 대중한테서 비난이 빗발쳤다. “국가에서 발표하는 것 중 믿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농담에 일기예보가 포함됐다. 그는 결국 자살했다. 영국 예보관들은 기상청 앞 피츠로이 로드를 걸어 출근한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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