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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14 17:12 수정 : 2016.12.14 20:25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측근들에게 “최순실은 내 시녀 같은 사람인데, 그런 사람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 봐주던 아랫사람’ 때문에 억울한 처지에 몰렸다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겠다. 하지만 여러모로 건강치 못한 반응이다.

‘시녀’란 말부터 시대착오다. 시녀는 “몸 가까이에서 시중을 드는 여자”로 정의되지만 주로 궁궐에서 왕과 왕비, 공주를 모시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평소 자신을 민주공화정의 대통령이 아니라 군주제의 여왕이나 공주쯤으로 여겼기에 이런 말이 쉽게 나왔을 것이다.

최씨가 ‘시녀’도 아니다. 유럽 궁궐에서 시녀는 귀족이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정에선 시녀장이 백작 부인 이상이었고,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시녀들은 학식을 갖춘 귀족 여성이었다. 귀족이 아니라도 최씨는 박 대통령이 ‘선생님’으로 지칭했던 사람이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선 ‘최 선생님에게 컨펌(확인)한 것이냐’라는 박 대통령의 문자메시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최씨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열 것을 지시하는 등 사실상 대통령 구실을 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최씨 등의 이권 획득을 위해 박 대통령이 직접 기업을 압박했다는 검찰 공소장을 보면, 박 대통령은 최씨의 ‘해결사’ 구실까지 한 ‘공범’이다.

그런 현실을 조작하고, 부인하고, 왜곡하기 위해 ‘시녀’란 말을 썼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와 딱 들어맞는다. 그중에서도 실패나 잘못의 원인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려 그 사람을 비난하는 ‘투사’(Projection)로 보인다. 투사 기제를 보이는 사람은 자신은 책임이 없으므로 무죄라고 인식하며 죄의식도 사라진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다. 이제는 지지층의 재결집 ‘핑계’로도 내세울 모양이다. 여러모로 치료와 교정이 필요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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