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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0 18:09 수정 : 2017.01.10 19:06

국가권력의 개인 감시에 관해서는 조지 오웰의 <1984>가 자주 거론된다. ‘빅브러더’로 불리는 정부가 사람들을 촘촘하게 감시하고 생각마저 통제하는 사회다. 다른 비유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은 느닷없이 체포된 은행원 요제프 케이가 체포 이유를 알아내고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좌절하는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은 거대한 법원 시스템이 자신에 관한 정보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데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질식할 듯한 무력감에 빠져들어 간다. 국가권력의 개인 침해에는 ‘감시’라는 오웰적 문제뿐 아니라, ‘관료기구의 자의적 정보 처리’라는 카프카적 문제도 있다.(대니얼 솔로브 <숨길 수 있는 권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도 불법적 감시와 자의적 정보 처리가 함께 벌어졌다. 블랙리스트에는 작품 내용 때문에 오른 이도 있지만, 시국선언이나 야당 후보 지지에 참여한 것만으로 등재된 이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에서 명단을 긁어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최소한의 지적 판단조차 생략한 것이니 무성의하기까지 하다. 감시와 검열의 한편에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 정보를 수집해 불이익과 제재 대상으로 정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정보를 수집·분석·관리하고 ‘처리’의 실행까지 맡은 것이 국가정보원과 문화체육관광부 등 거대한 관료 시스템이다.

실무자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할 것이다.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막스 베버의 말을 내세운 이도 과거 있었던 터다. 하지만 베버는 영혼 없는 기계처럼 작동하는 현대 관료제를 비판한 것이었지, 맹목적 복종을 정당화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베버는 오히려 선한 동기만이 아니라 행위의 결과에도 엄격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윤리’를 강조했다. ‘영혼 없는 관료기구’의 구성원들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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