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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다른 이름, 같은 사람 |
동명이인(同名異人) 못지않게 이명동인(異名同人)도 많다. 노출을 피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대표적이다. 의형제였던 김약수·이여성·김약산은 각각 본명이 김두전·이명건·김원봉이었다. 김약산은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 상무간사 김두희와 같은 사람이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은 제헌국회에서 본명인 지대형과 함께 광복군 시절의 이청천·지청천 등 이름 세 개를 다 썼다.
같은 사람의 다른 이름은 다른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본의 코미디언·진행자·영화배우인 비트 다케시는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로 “독특한 시정의 폭력 미학” 영화를 여럿 내놓았다. 국제정치학자 이용희는 <한국회화소사>를 쓴 미술사학자 이동주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성공한 작가였던 로맹 가리는 무명작가 에밀 아자르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로맹 가리는 절대 이런 작품을 쓸 수 없다”는 ‘찬사’를 받았다. <무정>을 쓰고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이광수와 전력을 기울여 일제를 도운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는 도무지 동일인 같지 않다.
신분 세탁을 위한 ‘이름 바꾸기’도 있다.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은 일제 순사 최도원이었다가 광복 뒤 최상훈으로 경찰 생활을 했고, 그 뒤 주변 환경이 바뀔 때마다 최봉수·최퇴운·공해남 등으로 모두 7차례나 개명했다고 한다. 이웃과 친구가 보증하는 ‘인우보증’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범죄 전력을 숨긴 일도 종종 발각된다. 법원은 “범죄를 기도·은폐하거나 법령상의 각종 제한을 피하려는 불순한 목적”의 개명은 ‘개명신청권의 남용’이라며 대체로 허가하지 않는다. 성범죄 등 중대 범죄 전력자, 거액의 신용불량자 등이 그런 경우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했지만, 내용과 정체성은 그대로다. 과거를 은폐해 비판을 피하는 것 외에 대체 무슨 목적이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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