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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21 16:42 수정 : 2017.02.21 19:24

쇼펜하우어는 “증오는 가슴에서 나오고 경멸은 머리에서 나온다”고 했다. 증오는 자신과 대등하거나 우월한 상대에 한하며, 따라서 난쟁이를 경멸할 수는 있어도 증오할 수는 없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틀렸다.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혐오는 경멸보다 오히려 증오의 형태를 띤다.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혐오표현’ 대신 ‘증오표현’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9일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는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종합보고서로서 큰 의미를 지니지만, 내용상 미흡한 대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정치적 행위’로 변모한 혐오표현의 실태를 제대로 짚지 않았다. 성소수자 문제만 해도 이들을 ‘종북 게이’니 ‘더러운 좌파’ 따위로 공격하는 게 최근의 양상이다. “성소수자와 좌파가 연합한 종북세력이 ‘교회파괴-가정해체-사회분열-국가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식의 주장도 범람한다.

“흑인들은 가죽이 검으며 털이 양의 털같이 곱슬곱슬하야 턱이 내 밀며 코가 넙적한 고로 동양 인죵들보다는 미련하고…”(<독립신문> 1897년 6월24일치 논설). 인종 차별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도 깊지만, 최근의 인종 편견과 증오는 그런 차원을 벗어난다. 특히 무슬림에 대해서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는 기류가 상당하다. 심지어 정부마저 “이슬람 반한 단체 적발 조직원 추방”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유포한다.

인터넷에서는 전라도 사람을 ‘홍어’라고 비아냥댄다. 5·18광주민주항쟁 희생자들을 ‘홍어무침’이라고 부르며 낄낄대는 무리도 있다.(인권위 조사에서 무슬림과 전라도인을 혐오표현 대상에서 뺀 것은 큰 잘못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잔혹한 표현이 일부 사람들한테는 열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할 길은 참으로 멀고도 어렵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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