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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독점권력의 ‘분리행위’ |
기준 미달 부품들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돼 원자력발전소에 납품됐던 ‘원전비리’의 원인에 대해 분리행위(decoupling)의 실패라는 분석(김윤호, <분리행위의 비판적 고찰: 원전비리 사건을 중심으로>)이 있다. 이 설명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값싼 전력을 생산하라는 사회적 요구와 안전기준이라는 제도적 압박의 상반된 압력을 받고 있었다고 본다. 경제성과 안전성 사이에서 고심하게 된 한수원은 절충을 시도한다. 제도적 기준을 다 맞추다가는 저렴한 전력 공급이 어렵고 비용 손실도 큰 탓에 제도적 기준은 형식적으로만 맞추기로 한다. 이른바 ‘분리전략’이다.
분리전략을 채택한 조직이 독점 집단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수원은 원전 운영을 독점하고 있고, 외부의 감시와 통제도 느슨했다. 이 때문에 제도의 형식화는 일시적인 데 그치지 않고 장기화하고, 조직 내에선 이런 일이 당연한 일로 굳어진다. 공식적으로 범법인 행위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생겨도 구성원들의 잘못을 크게 묻지 않게 된다. 학연 등 비공식적 인간관계가 중시되고, 조직은 폐쇄화돼 웬만한 잘못은 잘못으로 여기지 못하는 ‘집단사고’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가 2013년 잇따라 터진 원전비리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에 실패한 검찰도 비슷해 보인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여러 요구를 받았다. 정치권력의 요구에 사사건건 따르면서 독립과 공정 등 검찰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뒤로 밀쳐졌다. 공식 지휘라인 대신 ‘우병우 사단’ 등 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바로 소통하는 일도 잦아졌다. 검찰이 독점적 사법권력이다 보니 외부의 감시와 통제도 없었다. 그렇게 굳어진 탓에 시늉뿐인 수사로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받은 것이겠다. 특검의 수사기록 인계로 다시 시작하는 이번 ‘우병우 수사’는 제대로 될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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