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8 16:30
수정 : 2018.09.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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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54년간 임대료를 내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주민의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지난 7월 모인 사람들. 주거사회모임(ASC)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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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54년간 임대료를 내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인 주민의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지난 7월 모인 사람들. 주거사회모임(ASC)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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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스콰팅’(squatting)이라 불리는 빈집점거는 19세기 산업혁명 때도 없지 않았지만 1970년대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원형을 찾는 경우가 많다. 주로 빈민들이 오랫동안 버려진 집을 무단점거해 사는 것을 뜻했던 이 단어는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저항운동’의 의미를 띠게 됐다. 2015년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건물이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고 방치되는 게 무단사용보다 더한 범법행위”라고 주장했던 이가 바르셀로나 시장에 당선된 것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최근 <가디언>은 ‘오큐파이 베니스’란 제목으로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빈민·청년을 넘어 중산층으로 번지고 있는 빈집점거 운동의 양상을 전했다. 한 해 관광객이 2천만명을 넘는 베네치아에선 해마다 옛 도심 주민 1천명이 집에서 쫓겨난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몇배씩 올려 세입자를 내보낸 뒤 에어비앤비나 호텔로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투어리스티피케이션’(투어리즘+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이다. 2012년 결성된 주거사회모임은 직접 건물주에게 맞서 주민들의 강제퇴거를 막거나, 베네치아 내 빈집을 수리해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방치된 정부 소유 사회주택이 주요 대상이다. 지난 6년간 70여채를 점거해 150명이 살도록 했다. 이 단체는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끝나면 전시관 해체 뒤 버려지는 자재들을 얻어 집수리에 쓰는 ‘리비엔날레’ 활동도 벌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인 이 운동이 모두의 대안이 될 순 없을 것이다. 소유권에 비해 거주권 개념은 거의 없는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수십년간 임대료를 내던 베네치아 소시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겠다며 벌이는 ‘저항’은 집이 소유와 욕망의 대상이 된 시대에 주거가 인간의 기본권임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아파트 매매 광풍에 전셋값마저 껑충 뛴 요즘, 남의 얘기 같진 않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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