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02 18:03
수정 : 2018.12.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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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남부 부스라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시절의 모자이크 벽화에 낙타 행렬을 이끄는 카라반 상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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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남부 부스라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시절의 모자이크 벽화에 낙타 행렬을 이끄는 카라반 상인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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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작은 마을 푸슈카르에선 매년 11월(힌두력 8월)이 되는 날부터 보름 동안 성대한 전통 축제가 열린다. ‘푸슈카르 페어’(Pushkar Fair)는 특히 보름달이 뜨는 마지막 이틀간 낙타를 비롯해 말, 소, 양 같은 가축을 사고파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축시장이 백미다. 1만~2만 마리의 낙타와 수십만명의 상인과 관광객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 처녀 총각들의 전통 집단 혼례와, 낙타를 화려한 꽃과 장신구로 한껏 치장하는 낙타 미용 경연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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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인도 서북부 유목마을 푸슈카르에서 열리는 ‘푸슈카르 낙타 페어’에서는 화려한 장식품으로 치장한 낙타들이 선보인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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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국 파키스탄의 남동부까지 펼쳐지는 사막 지대에서 지금도 유목생활을 하는 이곳 주민들에게 낙타는 매우 긴요한 가축이다. 낙타는 건조하고 일교차와 모래바람이 심한 기후에 최적화된 동물이다.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유치환, <생명의 서>)에서도 끄떡없는 생존력 덕분에 ‘사막의 배’로 불린다.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2000년 동안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 권역을 잇는 동서 교역은 실크로드로 불리는 육로를 이용한 중개무역이었다. 그 주인공이 ‘카라반’(caravan)이다. 페르시아어로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뜻하는 ‘카르반’에서 유래했다. 한창때 카라반은 많게는 150마리가 넘는 낙타에 진귀한 상품과 이색 문화를 함께 실어 날랐다. 한 행렬이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게 무리여서, 중간중간 거점 구간을 릴레이로 잇는 방식이었다. 어떤 경로든 고산, 사막, 초원, 황야 등 거친 자연을 몇 달에 걸쳐 지나야 했으며, 때론 도적들의 습격에 노출됐다. 상품 값은 뛰었고, 카라반은 막대한 중개 차익을 남겼다. 산업화 이후 비행기와 트럭 등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대규모 낙타 카라반은 점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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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인도 서북부 유목마을 푸슈카르에서 열리는 ‘푸슈카르 낙타 페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축 시장이 백미다. ‘푸슈카르 축제 2018’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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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신대륙 아메리카에선 또다른 ‘카라반’ 행렬이 무작정 미국으로 향한다. 온두라스·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에서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진 난민들이다. 멀고 험한 길을 ‘함께 여행하는 집단’인 건 맞는데, 목적지에선 환대 아닌 냉대와 추방 위협에 막히고, 막대한 이익은커녕 당장의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한다. 유례없는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의 턱밑에는 빈곤과 폭력의 그늘이 한없이 짙다.
조일준 국제뉴스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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