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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6 18:24 수정 : 2019.01.16 19:20

메달이 지고의 목표였던 한국 스포츠의 성과 제일주의가 수술대에 올랐다. 대통령조차 “성적 지상주의와 엘리트 체육 위주의 육성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파르타식 훈련을 통해 단기간에 극대 효과를 노렸던 한국 체육정책이 결국 폭력의 기괴한 현실에 포위된 형국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메달 획득을 압박한 국가를 비롯해 선수단 관리에 실패한 대한체육회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스포츠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미디어도 은연중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국가대표팀이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졌을 때 격앙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참패’ ‘굴욕’ ‘참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조·중·동과 한겨레 등 네 신문에서 이런 용어가 얼마나 쓰였는지 찾아봤다. 검색 엔진은 국내 1500여개 뉴스 미디어의 기사를 수집 분류해 제공하는 ‘아이서퍼’로 정했다. 이 사이트에서 검색어로 ‘참패 & 선수’(26개), ‘굴욕 & 선수’(22개), ‘참사 & 선수’(9개)를 치자 관련 스포츠 기사가 추출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가 조 2위를 차지하자 ‘반둥 참사’가, 배드민턴에서 메달을 하나도 못 따자 ‘자카르타 참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멕시코 경기에서 장현수 선수가 페널티킥을 허용하자 ‘태클 참사’라고 했다. 2017년 월드컵 아시아예선 중국전 패배를 인용할 때는 ‘창사 참사’라고 썼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비참하고 끔찍하다는 뜻의 참사일까?

한국 체육은 혁명적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합숙소 폐지나 특기자제도 축소 등을 밀어붙이고, 대한체육회가 각 종목 국가대표팀의 선수촌 훈련 일수를 줄이면 일시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질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나 올림픽 메달 수가 하향세로 바뀌고, 국내 프로스포츠도 선수 수급에 제한을 받을 것이다.

이런 것을 국민이 인내하고 받아들여야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린다. 미디어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이 나올 때 좀더 중립적인 용어를 선택하는 것을 고민해볼 일이다. 경쟁의 목표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더라도 ‘크게 졌다’거나 ‘대패했다’고 쓰면 된다. 지는 게 ‘참사’나 ‘굴욕’은 아니다.

김창금 스포츠팀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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