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1 17:20
수정 : 2019.04.01 19:11
개화기 보건체육의 개념으로 들어온 체육은 1900년대 들어 지육과 덕육과 더불어 ‘삼육’으로 담론화된다.
1905년 2월20일 <황성신문>의 기고문인 ‘권고청년’은 청년들에게 덕육과 체육, 지육의 삼육을 당부하고, 같은 해 5월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YMCA)가 낸 광고에도 “본회의 주지는 덕육 지육 체육으로 공익을 도모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등 삼육이 부각된다.
삼육 가운데 우선순위는 점차 체육으로 바뀐다. “만약 사람들이 지육에 열심이고 체육에 소홀해 질병이라도 걸리면 금전과 관위와 명예와 지덕을 보전치 못할 뿐 …”(태극학보 3호. 1906년 10월24일) “우리 한국의 장래 세계는 소년(청년)의 세계라 … (중략) … 준비의 도는 세 개의 배움에 힘써야 하는데, 그중 첫째가 체육이요, 둘째가 덕육이요, 셋째가 지육이라. 몸이니 지덕이 있어도 신체가 건강치 않으면 무슨 소용이리.”(황성신문. 1907년 2월12일)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지식인 중심으로 조선체육회(1920년)가 만들어지고, <동아일보> 등 매체가 적극적으로 체육을 강조한 것도 그 이전부터 강화된 체육 담론의 영향이 컸다.
당시 신문을 보면 100년 전인데도 21세기 한국 스포츠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선수에게 학업상 특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 선수들이 식비도 내고 여비도 분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 운동이 공부에 방해되지 않을 뿐인가 도리어 공부를 돕는다는 것을 실례로써 보이기 바랍니다. … 선수라면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제일 분합니다.”(동아일보. 1923년 5월22일 기고문)
학교에서 선수 육성이 필요하지만 자칫 체육 하나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학원이나 전국체육대회에서 벌어진 승부 지상주의나 경기장 폭력, 부정 선수, 판정 불복 등의 고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1월 한국 체육의 체질을 혁명적으로 바꾸기 위해 민관 합동의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명의 위원들은 학원·인권·문화 등의 분과에서 6월까지 실천안을 낼 예정이다. 100년 넘은 체육의 과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창금 스포츠팀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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