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31 18:33
수정 : 2006.01.31 18:33
유레카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백남준씨를 두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런 표현을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실제로 그는 고국을 떠나 활동했지만 작품에는 한국적 모티브가 넘쳐난다는 평을 받는다. 1999년 12월31일 자정에 선보인 ‘호랑이는 살아 있다’는 대표적인 보기로, 호랑이는 바로 한민족을 뜻하는 것이었다.
백남준과 그의 정신적 스승인 존 케이지 등은 동양의 선에도 관심이 많아 스스로 수련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백남준이 서양의 가장 고전적 악기인 피아노를 박살낸 것을 중국의 선승 단하 천연이 법당에 모셔져 있던 나무 부처를 쪼개서 불을 지펴 몸을 녹인 행위에 빗대 설명하는 평론가도 있다.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순수성을 잘 보전한 고전인”이라고 백남준을 묘사한 도올 김용옥은 “그가 요제프 보이스나 존 케이지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속에 있는 ‘신바람’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신바람 속에서 인류 보편의 어떤 원초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백남준을 ‘한국이 낳은 예술가’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전에 그와 교분을 나눴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고개를 젓는다. “나는 백씨를 한국이 낳은 자랑스런 예술가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부끄럽게 느껴진다. 빈 현대박물관의 백남준 방에 가보면 그의 초기 작품인 깡통 찌그러진 것, 바이올린 줄 끊어진 것, 요상한 것들을 많이 늘어놓았는데 한국에서 그런 창조적인 일을 했다면 박물관에서 수집하지 않고 고물상 사람들이 제일 먼저 와서 가져갔을 것이다.”
그가 한국인임은 분명하지만 활동무대가 유럽과 미국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예술적 열정을 꽃피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백남준과 같은 창조적 재질을 지닌 예술가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풍토는 이제 바뀐 것일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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