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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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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일 욕심 부리다 위염까지 걸렸는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늘어나 죽을랑 말랑 저는 이십대 중반의 직장인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제가 정말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상사분들도 그걸 첫 면접 때부터 파악하셔서 ‘그래, 이 친구야!’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달리 업무량이 더 많고 의사 결정권과 책임도 상당합니다. 처음엔 상사분들이 예뻐해 주시는 게 참 감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이라 욕심나서 완벽을 기하고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했고, 성과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점차 일의 비중이 늘어 저는 다들 모두 퇴근을 하고 난 뒤에도 업무에 허덕일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기어이 얼마 전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원에 갔더니 과로와 스트레스로 위염에 걸렸답니다. 문제는 제 업무는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고유한 제 영역의 것이 되어 버린 지 오래라는 데 있습니다. 이번에 병원 가느라 잠깐 일을 다른 분들께 맡겼는데 누구 하나 제대로 해 놓지 못해 결국 제가 아픈 몸을 일으켜 야근해서 다시 일일이 손봐야 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잘하고 싶을 뿐인데 잘하면 잘할수록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전 이제 죽을 것만 같아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성과도 만족스럽게 내면서 할 만한 상태로 이어갈 수 있을까요? A 일 잘하는 분들, 참 상사복들 없습니다. 대체 옆에서 뭣들 하신답니까. 지나가면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몸 좀 챙겨!” 한말씀 던지시겠지만 정작 그 분들이 이 일 저 일 끊임없이 쌓아주신 주범이지요. 얘만큼 일 빠릿빠릿하게 하는 애가 없는데, 덕분에 자기 일이 편해지니 아슬아슬할 때까지 시킵니다. 똑똑한 상사라면, 안 짤릴 정도로만 대충 일하는 게 가장 어려운 당신 같은 타입에게 쉽게 만족감을 표현하지 않고 한 단계 높은 과제를 부과하겠죠? 상사의 격려 한마디에 춤추고, 싫은 소리에 면역력이 약한 당신은 오늘도 남이 채찍질하기 전에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를 혹사시킵니다. 인간에겐 한계라는 게 있어 계속 과잉 출력상태로 질주하면 어느 순간 반드시 다 소진되고 폭삭 주저앉습니다. 한번 소진된 에너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선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지 잊어버릴 만큼 오래 쉬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습니다. 더 똑똑한 상사는 이 현상이 반복되면 결단력이나 분별력, 일의 우선순위 설정능력, 열정과 창의성 등이 떨어질 것을 간파하게 됩니다. 일의 양이 많을수록 일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하지요. 당사자도 좋아했던 그 일들이 꼴보기도 싫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왜 그만한 보답이 없는 거야’라며 자폭할지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무모한 워커홀릭 습성을 가진 사원이 훗날 상사가 되면 더 골치 아픕니다. 그들은 실무자로서 욕심내며 일했던 감각이 몸에 남아, 일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불안하고 어색해합니다.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 부하 직원이 일을 어설프게 하면 ‘답답한 너한테 일을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후딱 해 버리는 게 빠르겠다’며 일을 도로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우수했던 만큼 ‘나는 저 시절에 다 해냈는데 왜 얘는 못하지?’라며 자기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부하 직원에게 충분한 기회도 안 주고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거지요. 당신, 벌써부터 “내가 아니면 안 돼!” 이러고 있으니 가능성 충분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거, 충분히 직장 동료들에게 증명했으니 쫌 릴렉-스! 특정 인간이 있든 없든 얼렁뚱땅 잘 굴러가야 그게 좋은 회사인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자신이 한 모든 업무의 목록을 작성해서 ‘정말 잘해야 하는 일’ ‘걍 대충 해도 되는 일’ ‘무의미한 일’ ‘하기 싫었지만 누가 부탁해서 한 일’ ‘내게 스트레스를 줬던 일’ 등으로 분류해 보세요. 패턴이 보일 겁니다. ‘좀더 여유가 있더라면 이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건 사실 내 일이 아니잖아’ ‘이 일은 간단히 처리해 버릴 걸’ ‘요건 일을 나눠 하자고 충분히 요구할 수 있던 건데’ 그렇게 정밀 분석한 자신의 업무환경 데이터를 가지고 상사에게 보고하세요. 더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일을 배분하든, 없애든, 사람을 더 뽑든, 당신에겐 상사의 현명한 솔루션과 액션플랜이 강력히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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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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