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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17:52 수정 : 2009.10.11 11:24

잘해주고 뒤통수 맞는 게 억울해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부터 접도록

Q 제가 처한 현실 - 전 살면서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 혹은 배려를 하고자 노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저에게 ‘넌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막 말한다’고 지적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울화가 치미는 겁니다. 남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저는 먹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돈을 빌려가 갚지 않는 친구, 일할 기회를 줬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 저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혹은 호시탐탐 제게 좋은 기회가 생기면 왜 자기는 그런 기회가 없냐며 빼앗아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도 당하다 보니 제가 남들 뒷담화나 잘하고 결국 사람에게 잘 당하는 모자란 사람이 되곤 합니다. 전 이 울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어느 순간 남들 좋은 일 해주느라 제 일은 늘 뒷전이 됩니다. 남들에게 “싫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압니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심지어 사람들 배신하고 이용하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할까요? 속세를 떠나면 그런 꼴을 안 보게 될까요? 아니겠지요. 우울함을 풀기 위해 늘 먹어 몸무게만 늘어난 저 자신을 발견하면 더 힘이 듭니다.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나서도 자학하거나 울화가 치밀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그들이 원래부터 못된 가해자였나요? 애초엔 잘 지내 보려고 당신이 먼저 배려한 걸 보니 아닐 겁니다. 그들이 모든 사람에게 일관성 있게 해를 가했을까요? 살펴보십시오, 아마 아닐 겁니다. 심지어 스스로도 만날 당하며 산다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관계 속에서 뭔가 작용한 거지요.

혹시 무의식중에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나요? 돈을 가진 자로서 돈을 빌려줄 때, 일을 가진 자로서 취업기회를 연결해줬을 때, 좋은 기회를 가진 자로서 그것을 자랑했을 때, ‘못 가진 자’에 대한 경멸하는 마음이 슬쩍 행동거지에서 내비치진 않았나요? 아예 격차가 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면 모를까, 동급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상대적 우월감 섞인 언동이 불쾌하게 뇌리에 박히다 보니 훗날 고마움의 표시가 질투 어린 해코지로 나타났다거나.

당해도 그것을 되갚을 만큼 독하지 못한 당신의 캐릭터도 한몫했습니다. 위에서도 당신은 향후에도 이용당하고 배신당할 걸 불변의 전제로 보고, 그렇다면 어찌 감당하냐고 묻잖아요. ‘비굴’한 냄새는 인간의 잔인함을 은연중에 끌어냅니다. 기어오르거나 갈구거나 뒤통수를 치도록 유인하지요. 스스로를 막 다루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 역시도 막 대해도 된다고 착각하게 되고.

너무 잘해준 것 자체도 죄였을까요?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가면서까지 무리해서 잘해주려 했다면 희한하게 그 무리한 무거운 기운이 상대에게도 부담을 주는지, 결과는 기껏해야 그들에게 ‘미움받지 않는 정도’지, 진심으로 ‘사랑받긴’ 힘들더라고요. 심술맞은 해코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쟤는 왜 저리 오버하냐’ 싶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인간’으로 간주됩니다. 제멋대로인 사람이 다소 미움받을진 몰라도 일부의 확실한 열렬한 사랑을 받기도 하는 걸 보면 줏대의 문제일지도. 선의의 기브앤테이크, 참 내 맘 같지 않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여기서 제일 억울한 건, 실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인간들에게 무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관계 스트레스의 대부분이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할 수 없는데 잘해주려고 무리수를 두다 보니 생기는 겁니다. 이게 뭡니까.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이상한 심리라니. 생각하면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사실 해코지당하는 것도요, 내가 솔직히 상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속내가 상대에게 은근히 전달되기 때문이지요. 못 미더워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피차일반이거든요. 뒤통수든 뒷담화든 표출 방식의 차이죠. 어쩌면 ‘쟤가 내 뒤통수를 칠 거라는 걸’ 마음 한편에선 이미 예감하고 있진 않았나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요놈.

속세를 떠나거나 파이터가 될 게 아니라, 아무래도 맨 먼저 할 일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은가, 누구로부터는 결코 미움받고 싶지 않은가’를 가려내는 일 같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어울리고 잘해주자는 거죠. 당연한 얘기 같지만 홀로 서길 두려워하는 이들에겐 쉽지 않지요. 소외감이 두려워 쉽게 뻗쳐 오는 손은 일단 덥석 잡고 알량한 그들로부터 잘리지 않기 위해 눈물로 나를 먼저 제물로 갖다 바치니까.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그런 후, 진정한 인간 사이의 ‘배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참 어려운 개념이죠. 보통은 인간의 마음속엔 ‘내가 배려받고 싶으니까 타인에게 배려하려는 꿍꿍이’가 숨어 있습니다. 공짜 없는 거죠. 타인의 배려까진 안 바라도 최소한 ‘타인을 배려하는 멋쟁이 나 자신’에게 흠뻑 취할 수 있으니 좋잖아요. 그러다 보니 종종 상대보다 한발 앞장서서 나의 이 관대한 배려 좀 먹어보렴 하면서 ‘강요’해서 입에 처넣어주려 했던 적은 없었나요? 아항, 오지랖! 차라리 그런 솔선수범 배려를 베풀 정도라면, 상대의 잘못이나 실패를 용서해주는 ‘용서의 배려’를 추천합니다. 나를 등쳐먹은 그들을 용서한 후, 당하게끔 방치한 나 자신도 용서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막 말하는 인생을 시작하는 거지요. 어렸을 때 그 친구들, 실은 당신을 질투했던 거라니까.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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