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12.23 18:56 수정 : 2009.12.24 10:11

등 돌린 아내 헤어질 수도 없고.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불륜 핑계 아내에게 돌리는 직무태만…섹스리스 정면돌파법은 ‘하는 것’뿐

Q 35살 기혼남성입니다. 6살 딸과 3살 아들~ 참 이쁘죠. 그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행복이구나 생각합니다. 집에서 물려받은 것 없고 고졸 학력이지만 집도 장만하고, 운영하는 사업도 탄탄합니다. 보이는 것만 말하면 행복하죠. 그런데 문제는 저의 역마살에 기인합니다. 귀가 시간이 늦다 보니 3년 전에 여자를 하나 알게 되어 3년 반 사귀었습니다. 몇 번을 헤어지려 했지만 끊고 맺는 걸 못하는 성격이라 그게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섹스와 애정결핍입니다. 와이프와는 관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와이프가 잠자리를 싫어하고 … 저도 재미가 없습니다. 참으로 속궁합이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까 생각합니다. 일부일처제에서 한 사람하고 섹스를 해야 된다면 전 불행한 사람이죠. 사실 지금의 와이프와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착한 사람이 없어서, 헤어질 수도 없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착한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착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아마도 저와 이혼하면 자살할 여자입니다. 또한 저는 애정결핍이 있어서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그 친구’를 더 이상 좋아하진 않지만 헤어지고 나면 생각이 또 날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식들 생각하면서 참고 버텨보려 합니다. 잘될까요?

A ‘그 친구’를 끊을 수 있겠냐고요? 아이, 물론이죠. 3년 반이면 솔직히 할 만큼 했잖아요. 질릴 때도 됐잖아요. 괜히 엄살 부리지 말고요, 끝낼 때쯤 되니까 괜히 아쉬워져서 감상적이 된 것뿐. 그래서 또다른 여자인 나한테, 술집마담한테 토로하듯 어리광 부리는 거잖아요. 혼외정사 오래 하면 정신적·육체적 피로 장난 아니고 스태미나 달리잖아요. 문제는 ‘그 친구’ 이후에도 끊을 수 있느냐는 거죠. 불륜은 특단의 조처를 안 하면 습관이 되니깐요. 그땐 어쩌겠느냐는 거죠. 바꿔 말하면 와이프랑은 앞으로 어쩔 거냐고요. 그러니까 할 거냐 말 거냐고요. 어라, 왜 갑자기 조용해지셨지?

하아, 물론 모르는 건 아니에요. 결혼하는 순간부터 안전하게 확보된 섹스가 재미없어지는 아이러니. 사실 요새는 대부분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기 시작해서, 어떤 의미로는 결혼 전에 너무 많이 해버려서, 결혼할 즈음 되면 진작에 새신랑과 새색시는 섹스에 식상해져 있죠.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게 결혼의 최고 장점이 아니라 최고 맹점! 결혼과 에로스의 양립, 어려운 거 압니다, 알아요. 특히 남자들은 하늘하늘 내 주변을 날아다니며 무릎에 앉을까 말까 콧등을 간지럽히는 나비들에게 동요되지, 무릎 딱 붙이고 앉아 꿈쩍 안 하는 마누라에게 동하진 않을 테니깐요.

아, 그렇다고 와이프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아이들 엄마로서 사랑하고 신뢰하고 심지어 이렇게 착한 사람 처음 봤다고 감탄하잖아요. 그런데요, 와이프 착하다고 자꾸 강조하던데 정말 착한 거 맞나요? 누가 누구보고 ‘착하다’고 머리 쓰다듬어주려 할 때는 보통 자기가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음을 과시할 때 은연중에 그러는데, 그저 나한테 관대하고 맞춰주는 사람, 나 없이는 못 살 사람, 이라는 ‘자뻑’이 착하다는 칭찬 뒤에 숨어 있는 건 아닌가요. 이혼하면 자살할 여자라니요. 풉. 심리적 의존은 되레 당신이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말이죠, 와이프의 대체 어디가 착하다는 건가요, 네? 결정적으로 침대에선 하나도 안 착하잖아요. 평소에는 이리 착한 여자가 잠자리에선 무시하고 거부하니 화나고 자존심 묵사발 된 거잖아요. 그러니 나름 자수성가한 당신이 유일하게 초라해지는 장소인 잠자리, 유일하게 안 착한 와이프를 알현해야 할 잠자리가 콤플렉스가 된 거죠. 애정결핍도 결국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해 상처가 덧난 문제가 아니던가요. 지금 와이프와 이렇게 한평생 살 거면 참 끔찍할 것 같다고 했는데 그건 와이프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너무 착해서?) 피차일반일 겁니다. 하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랑 바람피우는 게 더 상처일지(아마 대충 알고 있을걸요, 티 안 낸 건 너무 착해서?), 더 이상 나를 안지 않는 게 더 상처일지 가늠하기도 싫어 그녀 역시도 자식들 바라보며 참고 버텨보려 하는 거겠죠.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어떤 형식으로든 ‘노력’을 필요로 하는 거라면, 기왕이면 ‘정면돌파’ 노력하자고요. 섹스리스요? 해결책 딱 하나예요. 섹스 ‘하는 것’밖엔 없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섹스라는 게 ‘노력’할수록 더 잘 안되는 걸 어쩌라고요? 아내가 나와의 섹스를 탐탁지 않아할 때 남자가 느낄 헛헛함도 이해는 가는데요, 그런 아내로 만든 조력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내’가 아닌 ‘와이프’가 ‘그 친구’에 비해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아 기쁨을 주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고단하다면서 마침 부부니까 적당한 수준에서 서로 ‘봐준답시고’ 포기하기만 했잖아요. 쉽게 먹을 수 있는 떡마저 있었으니 부부관계 수준이 계속 얕은 채로 발전이 안 되었던 거죠. 나이 겨우 서른다섯에 무슨 속궁합 운명론입니까. 웃기지 마십시오. 벌써부터 이러는 건 그냥 자존심 세우며 태만 부리는 겁니다. 여태까지 한 노력 전혀 충분치 않아요. 아가들은 오늘 밤 산타할아버지에게 맡기고 타이거 우즈 짝 나기 전에 어서 포기하지 말고 ‘추가 노력’ 들어가세요. 저도 오늘 밤은 컴퓨터, 일찍 끄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올해 상담은 여기까지.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