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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24 19:21 수정 : 2010.02.28 13:58

그 품에 안길 수도 있다는 용기로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구박·폭언·일러바치기, 직장선배의 왕따짓 못 견디겠어요

Q 전 서른한 살의 직장인이고요, 업계에서는 꽤 유명하고 복지 좋기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3년여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반년간의 임시직을 거쳐 정말 운 좋은 케이스로 지난해 말에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관리자분께서 저를 좋게 보셨는지 저의 동종업계 경력과 임시직 때 근무 태도를 높게 반영해 이 회사에선 신입이지만 중간관리자급으로 발령을 냈다는 거지요. 그러고 나서 사내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직장 내 왕따죠. 그중에서도 특히 같은 시기에 다른 부서에서 온, 나이는 동갑이지만 선배분이 계신데, 어린 후배들 앞에서 저에게 폭언을 퍼붓고 제가 실수라도 하면 조목조목 따져서 상사에게 일러바칩니다. 자꾸 이런 일이 생기니 더 긴장해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 모두를 잃었습니다. 회사에 가면 정말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저를 윽박지르시는 그분이 분위기를 거의 주도하기 때문에 누구도 저에게는 다가올 수 없는 분위기죠. 저조차 괜히 내가 누구랑 친해지면 그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 시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참고 성실히 다녀야 할지 아니면 새 자리를 찾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저의 삶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며 무슨 일을 해도 의욕도 즐거움도 없고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만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A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경로로 승진했다’가 아무래도 눈엣가시였나 보네요. 한 사람의 ‘행운’은 이렇게 종종 다른 사람에게 ‘불행’인가 봅니다. 하지만 우선 안 좋은 상상의 극대화는 금물. 10명이 있다고 치면 보통 그중 1~2명이 왕따에 찬동, 3명은 왕따에 반대, 그리고 남은 5~6명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식인데요, 문제는 반대하는 사람들은 피곤하니까 대놓고 말하질 않고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은 사태의 본질도 잘 모르기에 그저 제일 먼저, 큰 목소리로 왕따시키자,를 외친 사람에게 어영부영 따라가는 거죠. 즉 모두가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당신을 괴롭히려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악의는 소수의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 뿐이지요.

회사 그만두지도 마십시오. 들어간 게 아까워서도 있지만, 회사 인간관계의 괴로움은 어느 직장에도 반드시 있는 법. 그도 그런 것이 사내 인간관계 갈등의 대부분은 ‘입장’과 ‘상황’ 등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만들어내는 것이니깐요. 고로 조직 구성의 변화에 따라 너무 어이없이 쉽게 해결되기도 하는, 그런 요물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이 사태도 정치적 관계 때문에 일어난 갈등이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을 괴롭히는 그 선배의 동기는 엄연히 ‘두려움’일 것입니다. 상사의 신임을 등에 업고 굴러들어온 돌이 왜 안 두렵겠어요.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 봐, 오래 있었던 나보다 일을 더 잘할까 봐, 부하들에게 더 인기 있을까 봐, 상사가 더 예뻐할까 봐, ‘같은 나이인데 나를 무시하고 선배 대접을 안 할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라는 사람이 아직 파악이 안 돼서’ 그녀는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선제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죠.

자, 이때 내 힘이든, 내 ‘빽’의 힘으로든 그녀를 날려보낼 힘이 없다면 ‘시간 벌면서 역학관계 바뀌길’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난 혼자서도 괜찮아, 내가 뭘 잘못했기에,라며 여태까지의 방어적인 자세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죠. 그랬다간 그녀의 오해와 두려움, 그리고 당신의 고통과 피해의식만 커져서 여러 사람 피곤합니다.

“나도 두렵다”고 먼저 능동적으로 표현하십시오. 이건 엄밀히 말해 ‘후배’인 당신이 쓸 수 있는 꽤 유용한 카드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근시안적으로 ‘이기고 지고’는 별 의미가 없고 어차피 선배는 그녀이니 당신이 그녀를 꼭 이길 필요도 없잖습니까. 직면하기 괴롭더라도 당사자인 그녀와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십시오. 대신 이때 당신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한 그녀의 반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해를 살 만한 뭔가를 했는지, 상대를 ‘선배’로서 존중하는 태도로 일관하십시오. 조금 더 용기가 있다면 내가 먼저 그녀의 품속에 뛰어들어가서 막말로 울면서 그녀에게 나 좀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엔 ‘칫, 거봐. 자기가 숙이고 들어올 거면서’라고 실룩거리더라도 사실 고맙죠. 본인도 나름 힘들었을 테니깐요. 솔직히 5년차 미만의 사내정치는 아직은 질투나 두려움 같은 나이브한 단계지요. ‘쟤는 대체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안도할 것입니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당장엔 그녀가 누그러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싶으면 멍했던 가슴은 그래도 점차 개운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 회사 사람들과는 하나둘 다시 친분을 맺기 시작하게 되고, 사람들은 새로 또 들어오고 나가고, 어느덧 이 회사에 익숙해지고, 괴물 같은 중역이 등장하여 어쩌면 두 사람은 공동전선을 형성할지도 모릅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뭐 회사란, 모름지기 그런 ‘웃기는 짬뽕’ 같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늘 변하는 장소라는 것, 그것 하나만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습니다.


추신: 아주 가끔, 사내정치 역학관계가 아닌, 정말 생리적으로 싫어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해답 없는 관계는 업무분장, 부서이동 등 상사의 적극적인 개입을 받아 무조건 적정 거리로 피해야 합니다. 런!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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