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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6 19:50 수정 : 2010.05.30 14:51

가부장제의 촌스런 고정관념!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남자를 대신해 여자가 신혼집 마련하면 손해 보는 장사인가요

Q 서른 살 직장여성인 저는 지난 5년간 사랑해온 한 살 연상의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이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남자친구가 현재 박사과정중이라 결혼 준비자금이 그다지 넉넉지 않습니다. 집안도 평범해서 자식 결혼 준비하려면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죠. 그는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드리는 것을 꺼리고 있어요. 반면 저는 학교 졸업 후 줄곧 돈을 벌어온 터라 차곡차곡 돈이 모여 수도권 전세금 정도의 돈이 모였습니다. 차도 있고요. 문제는 저희 집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들처럼 남자가 집을 마련하고 저는 그에 맞는 적당한 혼수만을 하길 바라십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도 한사코 남자에게 돈을 다 보이면 매우 후회할 것이며, 자신만의 돈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남자가 집을 무리해서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훈계합니다. 저는 헷갈립니다. 제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긴 했지만 돈이 저한테 먼저 생긴 것뿐이고, 그게 여자 쪽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이걸로 제가 집 마련에 보태면 엄청 후회할 일이고 자존심이 상해야 하나요? 물론 남자친구는 졸업 이후 취업이 보장될 만큼의 비전은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 주도적인 경제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억울해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여자친구가 돈이 있는데도 부모님의 돈을 결혼에 쓴다는 것을 안 내켜 합니다. 제가 찝찝하거나, 억울하다거나, 여자로서의 가치절하당하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건가요.

A 사람의 마음속엔 저마다 저울이 하나씩 있습니다. 뭔가를 결정하려고 할 때, 뭔가를 부탁받았을 때, 다른 사람을 처음 접할 때, 사람들은 한쪽 접시의 무게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적당한 것을 다른 쪽 접시에 올리려고 하지요. 결혼 상대가 집을 해온답니다. 그렇다면 그보다는 가벼운 혼수용품을 다른 접시에 올려봅니다. 저쪽으로 확 기울 것 같지만 며느리로서 향후 예측되는 여러 번거로움을 계산하니 이 균형은 적절하다고 자부합니다. 이번엔 남자가 ‘사’자 직업이라 합니다. 여자는 다른 쪽 저울에 여러 개의 열쇠를 올려놓습니다. 현재로는 가진 게 없는 남자지만 앞으로는 가질 게 많은 사람이므로 묵직한 열쇠뭉치는 밑지지 않는답니다. ‘양가의 결합’이라 하는 대한민국 결혼풍토에서는 이렇게 어떻게든 균형 잡힌 저울질로 탁월한 선택과 판단을 해 주변을 납득시켜야 두루두루 안심하는 모양입니다.

한데 지금 이 저울질에서는 여자가 너무 한쪽 접시에 많은 것을 담았다고 다들 뭐라 합니다. 남들 안 하는 짓을 왜 네가 나서서 하냐며, 지금은 감정에 겨워 이러지만 막상 너 투자한 거 알아주는 사람 없고 괜히 남자만 주눅 들 수 있고 시댁으로부터 돌아오는 것도 없다며 말이죠. 게다가 ‘비자금 조성’은 필수라 합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중에 다~ 쓸데가 있어.” 그런데 좀 이상해요. 비자금이 필요하다는 건 살다 보면 배우자에게 말못 할 급전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기껏해야 외모 치장하는 돈이나 약간의 유흥비, 목돈이래 봤자 ‘친정에 들어가는 돈’ 아니겠어요? 이런 소비를 왜 ‘미안해’하며 아예 부부간의 소통과 설득을 접어버린 걸까요. ‘의존’이 뼛속까지 스며들면 이런 우회적이고 방어적인 방식으로밖에는 생존하지 못하는 걸까요.

가부장제와 그 ‘하녀’들이 모여 자가발전시킨 이런 촌스러운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처녀 시절 모은 돈을 올인한 저울의 반대편 빈 접시가 ‘손해’를 뜻한다고요? 천만에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부피감이 확실한 그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쁨과 만족감입니다. 취업이 힘들고 첫 취업하는 나이가 점점 늦춰지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캥거루적 환경에선 생소하기에 더욱더 값지고 대견한 성취이지요. 나는 내가 그동안 열심히 벌어 모은 돈으로 내가 평생에 걸쳐 사랑할 남자와 그 사이에 태어날 아이가 살 집을 마련하는 데에 기쁘게 쓸 것이라는 너무나 당당한 계획. 이 가치를 자신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이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습니다. 내 저울은 내 삶의 방식에만 적용되는 거니까. 사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생판 잘 알지도 못했던 노인네들이 자기 노후자금 탈탈 털어 내가 기거할 집구석을 마련해주는 것을 당연히 기대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사고구조가 아닌가요? 그렇죠, 부자연스러우니까 저울 균형 맞춘답시고 아버님~ 어머님~ 낯간지럽게 불러보는 거겠지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당신은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 안 끼치고 스트레스 안 주는 성실함을, 결국 자신의 경제적인 성과로 이룩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가 남자냐 여자냐 이전에 인간으로서 상당히 괜찮은 행동입니다. 의존의 삶을 살아온 선배들이 콤플렉스 때문인지 이 성취를 같이 기뻐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요. 그러고 보면 여자는 연애 때부터도 늘 쉽게 줘 버릇하면 안 된다고 얼마나 훈계를 들어왔는지요. 여자는 쉽게 줘도 가볍다 하고, 묵혔다 줘도 부담스럽다 하고, 돈을 많이 내도 자격지심이라 하고, 몸 하나로 결혼했다 해도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잖아요. 관계에 있어서 주체성을 상실한 입장으로 포지셔닝시키다 보니 해석이 이토록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남자는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게 진정한 호사인데 말이죠.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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