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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9 22:08 수정 : 2010.06.11 15:22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Q 30대 초반 직장인 여자인 저는 한마디로 제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과 너무나도 자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퍼스널 트레이너입니다. 개인강습을 받은 지 석 달 되는데요. 아시겠지만, 운동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킨십이 이루어집니다. 어깨·팔·엉덩이·종아리를 만지게 되는데, 저 이걸 즐깁니다. 급기야 같이 한번 자면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로 저는 굉장히 수수하고 여성스럽고 얌전하고 정숙(?)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남친이랑 관계가 소홀해져서 그러냐고요? 전혀요. 사귄 지 2년 넘었지만 전화도 자주 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관계도 갖고, 서로가 첫 상대라 비교대상이 없지만 만족스럽습니다. 결혼도 약속했고요. 이렇게 딴생각하기는 처음입니다. 남친만큼 인품이 바르며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못 봤기 때문이죠. 근데 자고 싶은 상대는 성적 매력 빼고는 볼 것 없고요, 그래서 그냥 한번 자보고만 싶습니다. 요즘에는 하도 이런 생각이 간절해져서, 바람 피우거나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이 이해 갈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을 저지른다면 죄책감을 가지게 될까 봐, 오빠나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될까 봐, 같이 자고 나서 그 사람이 좋아질까 봐, 속이는 게 자꾸 습관이 될까 봐 두렵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남친과 관계 후에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데…결혼 전에 젊을 때 한번 놀아봐도 될까요? 이렇게 두려움과 걱정이 많다면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A 은근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금 그 인품 좋은 남자친구하고 결혼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딱 한 사람하고만 관계를 가지는 거네요. 음, 그 아득하게 숨 탁 막히는 심정, 왠지 손해 보는 느낌, 솟구치는 호기심 등 육즙적으로 물론 이해 갑니다. 말해 뭐해요, 나도 건강하고 젊은 여자니깐요.

그런데 말이지요, 찬물 좀 끼얹겠어요. 당신이 지금 상상하고 있는 원나잇스탠드나 트레이닝하다 일 벌이는 정오의 정사 따위는 결국 여자들만의 환상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금 당신의 하체 언저리에서 허벅지 위치를 바로잡아주는 그의 굵고 딱딱하고 빳빳하게 위로 치솟은 머리를 위에서 내려보노라면 무한 기대해 볼 만하지요.

물론 까보면 브라보, 정말 남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남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깐요. 모양이나 기능, 느낌도 다를 것이고 관계를 맺는 순서나 방식도 차이가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선 좀더 삶을 폭넓게 경험한다고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질적인 기능이나 성능은 뭐 대충 그게 그거라고 합니다. 행여나 한 번 해보고 훅 갔다 해도 그런 식으로 몇 번 더 하다 보면 또다시 ‘뭐 거기서 거기군’일 공산이 크기도 하고요. 현실 속의 삼십분은,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대세론을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치고 빠지는’ 정사에 대한 또 한 가지 환상. ‘원타임온리’이기에 황홀할 뿐 아니라 고양이처럼 빠져나갔다가 아무도 모르게 다시 내 침대 안으로 쏙 들어가 단잠을 청할 수 있을 것만 같죠? 가장 완벽한 시간을 공유한 공범으로서 상대가 그 추억을 가슴속에만 새겨둘 것 같죠? 그 남자에게 손쉬운 섹스 상대였다면 역시도 그의 지인들에게 손쉽게 회자될 것입니다. 행여나 ‘오빠’가 알게 된다면? 잘생긴 남자친구가 우연히 만난 한 여자를 너무도 격렬히 안고 싶은데 착한 여자친구 잃지 않으면서도 어찌 잘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요행 믿고 일 저질렀다 칩시다. 당신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한 번 상상해보세요.

다행히 상대가 입이 무겁다 해도 내가 못 잊습니다. 들통이 안 나도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것에 의해 변하는 것이 반드시 있거든요. 정사가 별로라서 후회가 남든, 정사가 끝내줘서 욕망이 더해지든, 오래 사귄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눈과 그와의 관계성이 미묘하게 변질될 것입니다. 몸이 받아들인 충격은 사실 내면의 많은 것들을 알게 모르게 변화시키거든요. 즉 한 번 선을 넘어가면 절대로 원래의 자리로 사뿐히 돌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거지요. ‘치는 건’ 쉽지만 ‘빠지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그럼에도 내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지고 ‘이런 리스크를 겪는 것도 인생이다’라고 확신한다면, 뭐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인생 뭐 있어? 하지만 살아보니 대개 ‘환상은 환상일 때가 환상적’인 것인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리도 부조리하고도 강한 충동에 휩싸이는 이유는 대개 그와 정반대인 합리적인 이유가 제대로 있더라고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인품 바르고 잘생기고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관계의 우수성을 결정짓는 이슈가 결코 아니기에 어쩌면 이 충동은 그 트레이너랑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보라는 ‘가장 정직한 몸의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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