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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8 23:53 수정 : 2008.07.10 10:28

J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은후 환호하는 정대세 선수. 그는 지난해 J리그 총 33경기에 출전해 16득점을 올렸다. 사진 가와사키 프론탈레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월드컵 축구대표팀 정대세(24) 선수가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지난 2월 동아시아선수권 대회 한국·일본과의 경기에서 내리 골을 넣으며 진가를 알렸던 정대세 선수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조선(북한) 대표팀의 스타 공격수입니다. 정 선수는 자이니치(재일동포) 3세 출신으로 ‘민족학교’에서 교육받고 자랐으며, 현재 제이(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팀에서 활약 중입니다.

정 선수는 2주에 한 번 독자들을 찾아옵니다. 국가간의 에이 매치는 물론 일본 제이(J)리그에서 몸소 겪는 이야기들과 함께 일본과 한반도를 넘나드는 젊은 축구선수로서의 생각,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을 전할 예정입니다. 그는 요코하마 에프엠 방송국 음악프로그램의 일일 디제이로 참여해 호평을 얻을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패션 등의 트렌드에도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골잡이 정대세’보다 ‘멋쟁이 정대세’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월드컵 축구 한국과 조선 대표팀은 오는 22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전을 치릅니다. 정 선수는 생애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합니다. 편집자


한국 대표팀의 풍족함 엿보며 부러움도 느꼈지만
환경 좋아야만 골 잘 넣진 않을 것


처음으로 팬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올해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을 계기로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제가 생활하는 일본에서만이 아니라 조부모의 고향인 한국에서도 칼럼을 쓰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동안 한국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축구선수로선 황송하달까, 엄청 보람을 느낍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정대세라는 인간을 헤아리고 이해해주시길 고대합니다.

물론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내용의 구심력과 문장력 등에 비례해서 독자 여러분이 지지해주거나 발길을 돌리거나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누적 경고로 출장 정지, 속이 타 잠도 못 자

저는 제 모든 것,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의 정대세, 그리고 신나게 장난치거나, 멍청한 걸 쓰거나, 침울해질 때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내 희로애락이 선명하게 전달돼 멋쟁이 정대세라는 인간이 스리디(3D)로 떠오르는 문장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럼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테마는 ‘월드컵을 짊어진 정대세’입니다만, 지금이 바로 월드컵 예선전이 한창이어서 평양 고려호텔에서 창밖으로 아름다운 거리를 가끔 내려다보며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이 실릴 무렵엔 6월22일의 3차 예선 최종매치인 대한국전을 남겨 두고 다른 다섯 경기를 소화한 상태일 것입니다.

6월8일 평양에서 열린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경기는 누적 경고로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데 팀에 부담을 지우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후회스럽고 죄송하고 안타깝고 속이 타서 밤엔 잠도 못 잤습니다.

그런 중에도 힘들지만 어떻게든 승리를 안겨준 팀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런 회한인지 마이너스 감정인지, 축구의 신은 실로 다양한 시련을 내게 안겨주실 모양입니다.

이 쓰라린 경험이야말로 내 인생에 둘도 없는 재산이 되리라는 건 두말할 것 없습니다. 축구 자체도 그렇지만 특히 조선 대표라는 장(場)이 나라는 인간을 단련시키고 둘도 없는 재산을 안겨줄 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긍지를 가슴에 안고 싸울 수 있다는 기쁨과, 활약에 따른 영예도 있습니다만 역시 역경 속에서 얻는 것이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걸 실감합니다.

인간은 잘 잊어버리는 동물입니다. 한데 좋은 일은 금방 잊는데 괴로운 일은 언제까지나 가슴에 새겨두고 좀체 잊지 못하지요. 하지만 역경이나 네거티브한 감정을 극복해왔기에 비로소 지금의 내가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 때도 고생을 많이 했고, 일본 사회의 차별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회한을 맛봤으며, 프로세계에 들어가서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보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그때마다 채찍질해가며 벽을 넘어 왔습니다.

서포트 체제의 차이에 처음엔 당황

조선 대표로 뽑혔지만 여전히 배울 게 정말 정말 많습니다. 먼저 일본 클럽에서 축구를 할 때는 필요한 것이 정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 갖춰져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거부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프로페셔널로서 당연히 받을 만한 대우이고, 스태프들도 선수가 가능한 한 축구에 집중하도록 필사적으로 지원합니다. 선수를 빛나게 만들기 위해, 졌을 때 선수가 변명할 구실을 주지 않도록 녹색 그라운드 이외의 장소에서 탐색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훌륭합니다. 프로페셔널이 바로 그런 거지요. 우리는 플레이어로서 프로입니다만 스태프는 그런 선수를 서포트하는 ‘프로페셔널’입니다. 그리하여 선수는 변명할 필요 없이 100%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고양시켜 갑니다.

나는 프로페셔널로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만전의 서포트를 받아가며 플레이할 수 있는 자만이 선택된 프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선 대표로 온 뒤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나 자신의 프로페셔널 정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처음 조선 대표에 합류했을 때 환경의 차이가 너무 커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풀 서포트’ 체제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서포트 체제의 차이에 놀라고 불만스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격차를 경험했습니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과 이코노미석으로 장거리 이동하는 일이나 심야의 환승은 체력을 소모시키는 강행군입니다. 전문용품 서포트 체제도 미비합니다. 가령 스스로 세탁을 해야 하는데 그 때문에 등번호가 금방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의료나 트레이닝 지식, 그에 관련된 용구가 부족한 점도 아쉬움에 속합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조선 대표로 활동하면서 이젠 익숙해졌지만 말입니다.

지난 3월26일 상하이에서 한국과 경기하던 때였습니다. 언제나처럼 유니폼을 들고 스타디움에 도착해서 조선 대표팀의 라커룸으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다가 한국 대표팀의 라커룸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문이 열려 있어 순간 안을 슬쩍 살펴보니 복판 테이블 위에 영양 드링크와 스포츠 드링크, 바나나, 초콜릿 등이 빈틈없이 놓여 있었습니다. 각 번호마다 유니폼과 스파이크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가와사키 프론탈레에는 당연히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 우리 라커룸에 도착했습니다. 금방 본 한국팀 라커룸의 잔상이 스쳤지만, 우리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팀 동료들은 당연한 듯 의자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일순 불안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을까?

‘공화국 여자축구팀’에서 배우는 것

과거에도 환경이나 의식의 차이를 내 나름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불만을 어디에다 쏟아내면 좋을지 몰라 하늘을 쳐다보거나 함께 대표생활을 하는 영학 형(안영학, 재일동포 출신의 북한 축구대표 선수로 현재 K리그 수원삼성에서 뛰고 있음- 편집자)한테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영학 형은 그런 상황에서도 불평이나 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축구를 하면 좋아져!”라고 말합니다. 함께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 언제나 포지티브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불평도 없이 오로지 공을 쫓아 달리는 팀 동료들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가슴 답답증이 풀렸습니다. 돈을 받고 축구를 하는 것만이 프로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대학(도쿄 조선대학교- 편집자) 다닐 때 당시 김광호 감독님이 “환경이 좋아야 축구를 잘한다면 일본 대표는 벌써 세계 제일이 됐을 것”이라고 곧잘 말씀하셨습니다. 공화국 여자축구를 보면 일목요연해집니다.

클럽팀의 연장선상이라 착각하고 평소처럼 임한 팀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 정신으로 잔디가 얼어 있는 날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공화국 여자 대표를 이길 리가 없습니다. 200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아시안컵축구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아시아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공화국 여자 대표의 ‘프로의식’에 감동했습니다.

“변명은 안 통한다. 그저 하는 수밖에, 저스트 두 잇!(Just do it!) 투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앙다물며 헤쳐나가는 거야!” 그런 마음으로 저도 상하이에서 한국과 맞붙은 결과 득점은 하지 못했지만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아시아의 강호 한국을 상대로 말입니다.

곤궁하든 풍요롭든 주변 상황에 기대지 않고 항상 최고의 동기부여 속에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어내기 위한 세밀하고 주도면밀한 작업도 불사하는 의식과 행동이야말로 진짜 프로의 자세겠지요.

많은 돈을 받으면서 안온한 환경에 빠져 주변의 완벽한 서포트에만 의존하는 것은 프로도 뭣도 아니고 다만 자립심의 결여일 뿐이라고 영학 형과 팀 동료들의 자세를 통해 깨쳤습니다.

본선에서 통일기를 휘날릴 수 있기를

학생 때의 제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일본에 있는 자이니치(재일동포) 민족학교는 여러분이 알고 계신 대로 운영자금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일본 정부의 지원금도 없이 동포들의 열의와 공화국의 원조로 꾸려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축구부 활동 환경은 조선 대표의 상황과 공통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중에서도 프로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왔습니다.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동급생과의 즐거운 하교 때 놀이나 휴일, 학업도 다소 희생해왔다고나 할까요.(하하) 뭐 그런 속에서 슛 연습으로 나날을 보내며 환경에 군말 없이 오로지 공을 쫓아 달렸습니다. 그때 나 자신에게 들려준 말은 “모두 프로선수가 될 순 없지만 프로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의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프로페셔널의 조건이 아닐까요? 마음속으로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나도 더욱 진화해서 조선 대표의 한 사람으로 이를 앙다물고 애쓰는 동료 모두를 반드시 월드컵으로 이끌고 간다! 그런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여러분 즐겁게 봐 주세요.

제 당장의 꿈은 남북이 함께 월드컵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서 통일기를 휘날리는 일이랍니다.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팀 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 필자가 쓴 북쪽 식의 용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렸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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