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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량을 발휘 못했던 6월22일 한국전. 정대세 선수는 부진의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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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안녕하세요. 고민 많은 청년 정대세입니다. 여러분, 마침내 나왔습니다! A: 오스트레일리아·일본·바레인·우즈베키스탄·카타르 B: 한국·이란·사우디아라비아·조선·UAE(아랍에미리트연합) 내 축구 운은 지금까지 나쁘지 않았는데…. 최종예선, 조선 대 일본 전이 무산되다니… 최종예선 진출의 기쁨도 잠시, 한국과 함께 죽음의 조에 끌려들어가버린 것 같아요…. 게다가 또 한국과 같은 조가 되다니, 운명의 장난인가요? 아니, 3차예선에서 내지 못한 결말을 빨리 지으라는 얘기겠지요. 어떤 조에 편성됐든 눈앞의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번에 일본과 같은 조가 됐다면 소망하던 조선 대 일본 전이 여기 일본에서 이뤄질 텐데요.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평소 함께 플레이하는 제이(J)리그 선수들과 나라의 위신을 걸고 정면승부를 한다는 점, 재일동포들이 응원하는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대전한다는 점으로도 분명히 의미깊은 시합이 될 텐데. 나에 대한 한국 쪽의 주목에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본거지인 일본에서도 더욱 주목받을 기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종예선에서 조선과 일본이 같은 조가 되는 걸 시작으로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 수많은 일본 미디어들의 취재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번엔 성사되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아, 이미 월드컵 무대에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정대세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성급하군요. 초조안달.) 하지만 월드컵을 향한 기분과는 전혀 다르게 지금은 온통 고민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에는 어울리지 않게 번민이 그칠 새가 없습니다. 그라운드에서 한 걸음만 바깥으로 나와도 머리를 채우는 건 축구에 대한 고민뿐. 오늘은 약한 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지금 제이 리그는 제15차전이 끝나고 리그전 반환점을 막 도는 중입니다. 소속팀 순위는 7위로 좋은 상황이라 할 순 없습니다. 저도 대표팀에서 복귀해 소속팀에 합류했지만, 힘든 정규전에서 살을 깎는 고투에도 3차예선 때부터의 무득점 기록이 계속돼 몹시 초조합니다. 2월에 동아시아선수권을 끝내고 대표팀에서 소속팀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대표팀에서 소속팀으로 돌아오니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표팀과 클럽 양쪽을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합니다. 제이 리그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베스트 일레븐에도 등재된 팀 동료 나카무라 켄고 씨가 과거 대표팀에서 클럽으로 복귀했을 때 시즌이 시작됐음에도 그 전과 같은 활약을 할 수 없어 고전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는 그가 컨디션이 좋지 않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같은 처지가 돼 보니 드디어 그 어려움을 알 것 같습니다. 대표팀에 가기 전과 갔다 온 뒤의 플레이가 너무나 달라진 내게 켄고 씨가 말을 걸어와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켄고 씨는 지금은 대표팀과 클럽을 완벽하게 오가는데, 지난 시즌을 마치고는 2년 연속 베스트 일레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 켄고 씨도 당시에는 자신과의 갈등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국가대표팀과 클럽을 오간다는 것 지금까지처럼 자신의 플레이가 되지 않는다, 이미지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는다, 금방 숨이 찬다, 주변이 내 요구대로 플레이를 해 주지 않는다 등등. 이제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고민까지 연이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겁니다. 경기 스포츠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들 합니다만 정신이 플레이를 크게 좌우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지금 그런 곤경에 두 발 모두 푹 잠겨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정말 장차 프로로서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드는 겁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나름대로 생각해낸 원인은, 대표팀 스케줄이 너무 바빠 연초의 체력단련 캠프에 참가하지 못한 것, 대표팀 연습과 클럽 연습은 종류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각 팀에서의 역할과 요구가 다르다는 것 등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쳤다는 데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피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변명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내 장기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선에서의 체이싱(chasing·상대방 선수를 쫓아가 공을 빼앗아오는 것)도, 활발한 움직임도 지금은 잠잠해졌고 플레이 선택도 신통찮습니다. 대표팀에 가서 지친 건 아닌가? 대표팀에 가서 콧대가 높아진 건 아닌가? 또는 대표로 국가의 위신이 걸린 시합을 경험한 뒤 클럽에서는 동기유발이 안 되는 건 아닌가? 언론 보도를 너무 의식해 축구에 집중할 수 없게 된 건 아닌가? 그렇게 온갖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분해서 눈물까지 나오고 후려갈기고 싶을 정도로 치받쳐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릅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특별히 동기부여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클럽에서의 포지션 경쟁도 불타오릅니다. 한데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건 왜일까요? 24살인 내 몸이 벌써 30을 넘긴 육체연령이 돼 버렸나 생각이 들 정도로 헐떡거립니다. 흡사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변명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번 칼럼은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굳이 지금의 고민을 글로 적어둡니다. 라이벌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는 이 괴로운 상황도 지금까지의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학생 때는 주목받은 적 한 번 없었습니다. 동급생 엘리트들의 활약을 곁눈질하면서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모래바닥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기억. 아무런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노력. 몇번이나 울며 베개를 적신 학생시절. 대학 4학년 때 눈에 들어온 프로라는 미래. 그래도 현실은 만만찮아 많은 클럽들 연습에 참가했지만 어느 클럽도 ‘필요없어’일변도였을 뿐. 하지만 마지막으로 나를 거두어준 가와사키 프론탈레. 그것으로 축구인생이 호전되는가 했지만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시합에 출장해야 한다는 더욱 높은 벽. 그런 벽을 하나 하나 시간을 들여 타고 넘어왔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의 벽은 간단하지는 않지만 타고 넘을 만 하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넘어왔으니까요.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 제 고민 해소법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우선 “신은 극복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시련을 준다”는 말입니다. 노력하는 사람,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만 벽이나 곤란이라는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 곤란을 넘어서 더욱 강해지기 위해! 내 앞에 곤란이 버티고 막아선 것은 내가 열심히 달리기 때문에 더 높은 곳을 향하도록 기회를 주려고 그런 것일 겁니다. 두번째는 “잘 안 되는 시기는 잘 될 때를 위한 충전기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잘 안 될 때 다른 사람을 질시하고, 잘 될 때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인간은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면 그렇게 돼버립니다. 그러니 항상 거기에 지지 않고 살아야 진정한 인격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면이 너무 많지만, 축구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에게 축구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인생의 스승’이라고 대답합니다. 축구에서, 안달하고 번민하며 배우는 게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내 감정에 굴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충전해가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한 결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오직 실행할 뿐, Just Do It! 결단코 이 벽을 넘어가겠습니다. 한국에서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익사이팅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8월2일에 열리는 조모(JOMO)컵에 관한 겁니다. 예년의 제이 리그 선수들만으로 치르는 조모컵은 제이 리그 구성원끼리의 싸움이어선지 전혀 긴박감이 없는 그저 쇼일 뿐이었으나, 올해부터 케이(K)리그 올스타와 제이 리그 올스타가 대전하는 한-일전이 돼 저도 이 시합에 한 번 나가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깥에서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기적처럼 제가 출장선수로 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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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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