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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6 17:35 수정 : 2008.09.17 17:35

지난 3월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 거리에서 잡지 화보 촬영을 할 때의 모습. 그는 패션에도 끼가 많은 청년이다. 사진 〈포포투〉 제공.

[매거진 esc] 멋쟁이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정대세 취급설명서 ①- 대학 축제 땐 인기 개그맨 흉내로 모두를 놀라게 한 ‘별난 놈’

드디어 감각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7월21일 열린 제이(J)리그 제18차전에서 강호 우라와 레즈 팀을 맞아 두 달 만에 골맛을 보았으니까요. 1 대 1로 비기던 후반 16분 출전해 5분 만에 왼발로 결승 역전골을 넣었습니다. 이후 우리 프론탈레 팀이 한 골을 더 기록해 3 대 1로 이겼지요. 제이(J)리그와 케이(K)리그 대표팀이 겨룬 8월2일의 조모(JOMO)컵에도 참여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경기에서는 골을 기록하지 못했군요.

온난화 걱정하다 밤중에 ‘기부 행각’도

독자들과 네 번째로 만납니다. 없는 머리를 짜내 가며 즐겁게 쓰는 중입니다. 이제까지 이런 글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칼럼이 처음입니다. 쓰면 쓸수록 기분을 문장 속에 녹여 넣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몇 년 뒤쯤 이 칼럼을 다시 읽어본다면 제가 이런 일로 머리를 싸맸단 말인가 하며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블로그 같은 것도 한번 시작해 볼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의 거리도 더욱 가까워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 설렙니다.

저는 즐겁게 칼럼을 쓰는데 독자 여러분도 기분 좋게 읽고 계신가요? 무척 걱정이 됩니다. 읽으신 분은 꼭 한 번 제게 감상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기운이 났다든가, 공부가 됐다든가, 아니면 불만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이 제겐 격려도 되고 더 좋은 칼럼을 만들어가는 활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축구선수의 신통찮은 글이긴 하지만 모처럼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찝찝함보다는 환한 기분이 들게 하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네 번째 글은 ‘정대세 취급설명서 1’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취급설명서 1을 읽으면 정대세의 25%를 알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축구 이야기로 꿈을 이루기까지의 벽, 고민 등 다소 딱딱한 내용이었습니다만, 축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정대세의 맨얼굴을 홀가분하게 한번 써보려 합니다.

정대세는 ‘고민’ 덩어리입니다. 먼젓번 칼럼에서 썼던 것처럼 축구의 고민은 자나 깨나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밖에도 정대세에겐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작은 일로도 고민에 빠지는 성격은 어릴 적부터 바뀌지 않은 것들 중 하나입니다. 축구선수를 그만두면 고민만 남을 겁니다.(하하)

그런 저의 천적이 ‘밤’입니다. 무슨 작은 고민이 있는 날 밤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서…. 눈을 감으면 그놈의 고민이 머릿속을 빙글빙글빙글.

어릴 적 장난질을 한 날엔 부모님한테서 야단맞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면 꿈에서도 몇 번이나 야단맞는 장면이 나와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하찮은 일에서부터 지구온난화로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걸 걱정하다 잠 못 자고, 아프리카가 서서히 사막화되는 걱정으로 밤중에 모금함에 돈을 넣으러 편의점에 가는 등 별짓을 다 합니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고민을 합니다. 이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내 머리카락입니다. 아직 24살인데 흰머리투성입니다. 계속 늘어납니다. 고민한 만큼 흰머리가 늘어나는 거라면, 흰 머리카락 수만큼 고민해서 어른이 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에는 고민하다 지쳐 포기하고서야 곯아떨어집니다.(하하)


초등학교 4학년 축구부 시절의 정대세(왼쪽에서 두 번째), 중학교 때까지만해도 그저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사진 정대세 제공.

동물 다큐멘터리만 봐도 슬프다네

그라운드에서는 정반대. 정대세는 ‘스트레스 제로’입니다.

그라운드에만 올라가면 제 사전에 스트레스라는 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흔히 주위에서 “스트레스 받지”라든가 “스트레스 대처법은?” 따위의 질문을 하지만 그런 것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그라운드 바깥에서는 이런저런 고민에 빠집니다만 그라운드에 한 발짝만 올려놓으면 오로지 위만 바라보며 축구를 즐깁니다. 그럴 때는 잡음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인간 불도저’로 변해 버립니다.

장난꾸러기 정대세는 ‘별난 놈’입니다. 중학 시절까지는 그저 내성적인 소년이었습니다. 그랬던 내가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고교생 시절입니다. 전교생 모임이라도 있으면 앞에 나서고 싶어 좀이 쑤셨습니다. 딱 한 번 스타가 된 적이 있는데, 아이치현 고교선수권 대회 베스트4 시합에 전교생이 응원하러 와 주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별난 놈’의 본색이 드러난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의 일입니다. 뭔가 시선을 끄는 짓을 해봐야겠다고 작심하고 학교 축제 기간에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던 개그맨 흉내를 내서 모두를 놀라게 한 겁니다. 그날은 축제의 명물이 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장사진을 쳤습니다.

물론 축구에서의 활약을 통해 조금씩 주목을 받아 염원했던 프로 입단도 하게 되고, 졸업식 날에는 후배들한테서 같이 사진 찍자는 요청이 폭풍처럼 쇄도했습니다. ‘별난 놈’인 제게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프로가 된 뒤 모교 학생들을 만나면 눈을 반짝이며 사인을 해 달라고 주위에 모여듭니다. 그러나 학교 축제 때의 그 흉내 내기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후배들은 “이자가 그 정대세란 말인가” 하는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기 때문에, 그럴 때는 그 기억은 조용히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라고 말해 줍니다.(하하)

이런 ‘별난 놈’인 저는 취재당하는 일도 무척 즐깁니다. 축구시합에서도 응원하러 온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투지에 불탑니다. 유명해질수록 언동을 조심하고 품위도 갖춰 나가야 한다는 걸 통감하기도 합니다.

취재당하는 일도 무척 즐기는 편

이면의 정대세는 ‘눈물’이 흘러 넘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습니다만, 저는 눈물을 잘 흘립니다. 이제까지 몇 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을지. 애정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물론 <겨울연가>를 볼 때도 울어버렸습니다. 대자연의 동물들을 보여주는 프로에 특히 약합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계의 냉혹함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여성 팬 여러분, 이런 남자는 안 됩니까?!


정대세의 즐거운 프리킥
지난 3월 상하이에서 열린 월드컵 3차 예선 조선 대 한국전 국가제창 때 흘린 제 눈물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국가를 듣노라면 왠지 뭉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9월부터 열릴 최종예선에서도 대표로 불러준다면 다시 그때처럼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과 ‘스트레스 제로’와 ‘별난 놈’과 ‘눈물’로 이루어진 정대세입니다. 지금까지 대충 저의 25% 정도를 이해해 주신 걸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런 정대세가 싫습니까? 역시 축구에서 대활약을 해서 빛나는 정대세 쪽이 멋지겠지요. ‘취급설명서 2’도 기대해 주세요. 그럼 이만, 안녕.

정대세 조선 축구대표팀 선수·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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